증권
빚 돌려막는 저소득층 4배 급증
입력 2015-06-22 17:31  | 수정 2015-06-23 09:37
서울 강동구에 사는 이 모씨(60) 부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직장을 잃자 소규모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며 근근이 생활해왔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부동산 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지자 5000만원 상당의 빚을 졌다.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부부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뿐이었다. 이자는 40%가 넘었고 이마저도 연체가 이어지자 이씨 부부는 여러 대부업체에 '돌려막기'로 빚을 갚았다.
원리금은 순식간에 1억원으로 불어났다. 최근에는 바꿔드림론으로 대출금 일부를 9%의 낮은 금리 대출로 갈아탔지만 여전히 이씨 부부는 매달 수십만 원을 갚고 있다.
소득이 아주 적은 계층의 빚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생활비가 부족한 저소득층이 한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다음 다른 금융사에서 돈을 빌려 갚는 '빚 돌려막기'를 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경제생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얘기다.
22일 신용평가업체 코리아크레딧뷰로(KCB) 분석에 따르면 소득 1분위 가운데 과다채무자 비중은 2009년 3월 7.4%에서 올해 3월 26.9%로 19.5%포인트 증가했다. 소득 1분위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사람이 채무가 소득 대비 60% 이상인 과다채무자란 얘기다.

소득 1분위란 우리나라 가구를 소득 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하위 20%를 뜻한다.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1분위는 매달 평균 68만7500원(2014년 기준)을 버는 사회취약계층이다.
문제는 저소득층의 과다채무자 비중만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 2~3분위 가운데 과다채무자 비중은 6년 새 거의 늘지 않았다. 소득 2분위 과다채무자 비중은 같은 기간 8.47%에서 11.45%로 2.98%포인트 늘었다. 소득 3분위 과다채무자 비중도 같은 기간 9.3%에서 10.29%로 0.99%포인트 증가했다. 6년 새 과다채무자 비중이 20%포인트 가까이 늘어난 소득 1분위와는 차이가 있다.
소득 1분위가 빚을 늘린 것은 부족한 생계비를 빚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저소득·저신용자들이 빌려 쓸 수 있는 대출시장이 열리면서 2금융권이나 서민용 정책금융 이용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위기가 아시아로 옮겨졌던 2011년부터 경기가 나빠졌고 소득 양극화 등으로 서민 가계가 어려워졌다"며 "(당시부터) 생활자금을 빌려 쓰는 과정에서 과다채무가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득 1분위의 과다채무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2011년부터다. 당시 1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했던 저소득층은 저축은행, 캐피털, 대부업체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또 저소득층이 2009년부터 생긴 바꿔드림론, 햇살론 등 서민금융상품을 이용한 것도 빚이 늘어난 이유다. 상환이 어려운 저소득층이 돈을 빌리다 보니 서민금융 상품은 해마다 연체율이 늘고 있다. 바꿔드림론은 2009년 12월 연체율이 1.5%에서 지난달 말 25.7%까지 치솟았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소득 1분위 가구는 생계형 빚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같은 현상은 저소득층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며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서민금융 대출과 함께 소득을 늘려주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해 은행들이 10% 전후 금리 대출상품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22일 밝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은행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현재 서민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금융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차주의 신용도와 대손비용을 충분히 고려해 서민 금융상품을 출시해 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23일 서민금융 안정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효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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