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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니들이 삐삐밴드를 알아?
입력 2015-06-12 11:48  | 수정 2015-06-12 12:38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1995년. 머리카락을 빨갛게 염색한 밴드가 등장했다. 방송국에 난리가 났다. "당장 검정색으로 돌려놓으라"는 호통이 나왔다.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였다. 이후 그들은 머리 색깔은 바꿨지만 카메라에 (당사자들은 실수라고 주장) 침을 뱉거나 가장 긴 손가락을 뽐내기도 했다.
욕도 많이 먹었다. '우리 강아지는 멍멍멍 옆집 강아지도 멍멍멍. 안녕하세요' 따위 노랫말로 신성한 록을 모독했다는 구박을 들어야 했다. 밴드 음악은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야 했다. 속된 말로 '삑사리(음 이탈)'는 예나 지금이나 가수에게 치명적인 놀림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게 뭐 어때서?"라고 되물었다. 자연스럽고 재미 있으면 됐다.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다. 아마추어도 아니었다. 보컬 이윤정을 제외하면 ‘시나위 ‘카리스마 ‘H2O 등 헤비메탈 밴드 멤버로 활동했던 베테랑 뮤지션들이었다.
당시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아이들과는 또 다른, '문화혁명'(1집)을 외친 삐삐밴드 이야기다. 2015년 6월 12일. 그들이 돌아왔다.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다시 뭉쳤다. 미니앨범 'pppb'가 이날 발매됐다. 타이틀곡 '오버 앤 오버(over and over)'를 비롯해 총 4곡이 수록됐다. 20년이 지난 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심각할 필요 있나요?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나온 게 아닙니다. 쉽게 쉽게 가자. 진짜 그게 전부예요. 재미 있으면 되는 거죠. 아! 그렇다고 무게감조차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삐삐밴드들은 피식 웃었다. 심드렁한 듯 보이지만 말괄량이 삐삐 기질은 여전했다. 괜히 삐삐밴드가 아니다.
다음은 삐삐밴드와의 일문일답.
-어떻게 다시 모이게 됐나
▲ 20주년이니까. 공연 한 번 하자. 각자 연락했더니 다 좋다더라. 그래서 앨범도 발매했다.
-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 이윤정 : 남편과 'EE'라는 퍼포먼스팀으로 활동했다.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뮤직 페스티벌(SXSW Music Festival)에도 나갔다. 육아도 열심히 했다.
▲ 달파란 : 전자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2004년에는 고구마와 함께 그룹 '달파란&병준'을 결성했다. 이후 모던 록적인 전자음악을 시도했다. 영화음악도 했다. (영화 '거짓말', '달콤한 인생' '나쁜 영화', '암살' 등 다수 작품에서 그는 음악감독을 맡았다)
▲ 박현준 : 모노톤즈라는 밴드로 계속 음악 작업을 해왔다.
- 기존 삐삐밴드와 음악이 달라졌나
▲ 글쎄 잘 모르겠지만 비슷하다. 이미지는 대중이 정해놓은 것이지 않나. 우리가 한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시도가 있다면 다 해보려고 했을 뿐이다. 장르는 상관 없다. 앞으로도 여러 시도를 많이 할 것 같다.

- 1집 '문화혁명'. 당시 촌스러운 문화 시스템을 비판했다는 평과 함께 '100대 명반'으로 꼽히기도 했다
▲ (웃음) 우리 입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봐 주신 해석인데, 우리가 그렇게 거대한 생각을 갖고 활동하진 않았다. 다만 그때 음악이 좀 획일적이어서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파격적인 기획을 짜진 않았다. 그냥 그런 사람 셋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 뒤돌아 봐 자평한다면
▲ 재미 있었다. 어렵지 않은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 있는 경험이다.
▲ 이윤정 : 예전에는 라이브할 때 내 맘대로 멜로디도 바꾸고 코러스도 넣고 그랬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가수들과 옛이야기를 하다 보면 '죽고 싶을 정도로 자기 노래가 듣기 싫었다'고 하더라. 같은 노래를 (립싱크로) 계속 들으니까. 그것도 힘들겠다 싶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참 다행이다 생각했다.
- 타이틀곡 '오버 앤 오버', 소외계층이 느끼는 공허감과 악순환. 우리 시대를 살아가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 보도자료는 그렇게 써야 한다. 하하.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심각한 건 아니다. 대중음악이 심각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살짝 이 정도 얘기는 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재미를 추구한다고 무게감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 오랜 만에 모이니 어땠나
▲ 이윤정 : 많이 늙었구나…는 아니고(웃음) 더 많이 (음악 역량이) 늘었구나 싶었다. 오빠들과 만났을 때 나는 처음 음악을 접했다. 삐삐밴드 특성이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음악은 아니다. 음악적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
- 달파란, 박현준은 삐삐밴드 전 실력을 인정받는 헤비메탈 그룹 멤버였다. 갑자기 삐삐밴드를 한 이유가 있었나
▲ 달파란 : 기억을 더듬어보면 열아홉 살 때 시나위로 시작했다. 그 시절 록 연주자들끼리 누가 더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느냐는 식의 경쟁을 폈다. 개인적으로 그게 좀 짜증났다. 음악은 테크닉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H2O를 한 건데 어느 순간 또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삐삐밴드를 만들게 됐다.
- 달라진 점이 있다면
▲ 이윤정 : 음악을 아예 모를 때 오빠들에게 방목형 교육을 받았다. '삑사리'가 나던 반음이 나오던 그대로 갔다. 내가 노래를 못 불러도 그냥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분들 여전히 그런다. 신곡 녹음을 하면서 한 5분했는데 그만 하라더라. 이런다. 예전에 나도 그것이 마냥 좋다 했는데 지금은 다시 한 번 (녹음) 해보고 싶고 후회도 되곤 한다.(웃음)
-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 물론 고민은 있다. 난이도를 어느 정도로 맞춰야하는 지 조금 헷갈렸다. 대중음악이니까. 대중음악이 수준 낮다는 게 아니다. 취향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다는 건 아니다. 그간 음악을 해온 과정이 있고 철학이 있다.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다. 갖고 있는 걸 갖고 쉽게 만들었단 이야기다.
- '제 2의 삐삐밴드'는 없었다
▲ 나올 수가 없다. 바로 그런 거다. 음악적인 룰에 맞춘 팀이 아니기 때문이다. 틀에서 벗어난 부분들이 있다. 앞서 말했듯 '삑사리'를 누가 따라하겠나. 정해져 있지 않은 것. 비슷한 팀이 나온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그렇게 되고 싶어한 가수도 없을 것 같다.
- 퍼포먼스를 했던 이유는
▲ 특별한 이유 없다. 방송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대중 앞에서의 쇼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것들을 너무 과도하게 포장하는 것 같다. 실제로 (아이돌 팬들은)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측면도 있고….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 못하는 것 같다.
- 방송 활동 계획은
▲ 굳이 하지 않으려는 건 아닌데 요즘 많이 변했더라. 우리가 나갈 만한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안 불러주시는 걸 수도 있고…(웃음) 우리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 타이틀곡 자이언티가 피처링 했다
▲ 이윤정 : 사실 그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그가 내게 피처링을 부탁했는데 우리 앨범이 먼저 나올 것 같더라. 그래서 네가 해주면 나도 해줄게 역으로 부탁했다. 원래 잘 알지는 못했다. 그의 노래 '양화대교'를 들으면서 '이 친구 잘한다' 생각만 하고 있었다.
- '엄마' 이윤정은 어떤 사람인가
▲ 굉장히 멋있는 엄마다. 하하. 일부러 어떻게 하려는 건 없다. 하지만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사회에서 주는 영향이 벌써 있더라. 어린이집에 보내 보니 남자는 하늘색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머리카락를 기르면 안 된다는 개념이 자리잡는 식이다. 안 되는 것이 아니다. 해도 된다고 설명하는 게 힘들긴 하다. 아이가 마음을 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엄마로서 무언가를 주입시키려 하진 않는다.
- 획일화 된 음악 시장, 지금은 변한 것 같나
▲ 음악적 장르가 다양화 되기 보다, 여러 장르가 섞이는 시대인 것 같다. 계속 섞여 가고 있다. 록, 일렉트로닉, 힙합, 덥스텝 레게 등 모두 결합되고 변형되고 있다.
- 달파란은 음악적 얼리어답터인가
▲ 그렇진 않다. 관심 있어서 찾아 듣는 음악이 많을 뿐이다. 내가 진지한 음악을 발표하진 않았다. 발표해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웃음)
- 심혈을 기울인 음악보다, 쉽게 작업한 삐삐밴드가 더 주목받는 현실인데
▲ 당연한 것이다. 어렵고 진진한 음악이 대중적이기 어렵다. 아예 구별하는 편이다. 몸에 익숙해졌다. 사실 그게 헷갈리면 작업하기 힘들다. 선을 그어야 한다. 기획사가 만들어 내놓는 아이돌 그룹이 많다보니 우리가 특이해 보이는 데 그런 거 없다. 우리도 사람이다.
- 영화음악의 매력은
▲ 달파란 : 아무래도 흐름이 짧은 음악과는 다르다. 음악이 내러티브를 만들고 배우의 감정선을 살린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나 역시 좋은 영화를 많이 보면서 정서가 더욱 풍성해졌다.
- '파격의 아이콘' 이제 나이도 들었는데
▲ 하지 않으려 한다고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이다. 노력한다고 안 된다. 어디 가지 않는다. 스스로 '하지마' 되뇌이지도 않고, 몸 내키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한다.
- 삐삐밴드 활동은 계속 되는가
▲ 열려 있다. 구체적으로 열심히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여유를 갖고 공연할 수 있으면 하고, 또 다른 음악 만들 수 있으면 만들 것이다. 제한을 두는 게 없다. 의외로 우리 공연을 보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더라. 얘기만 들었던 그룹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음반은 명함 정도가 되어버린 세상이지 않나. 음반은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알린 정도로 생각하고 공연을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요즘 케이팝 한류에 대한 생각은
▲ 달파란 : 한국 브랜드 인지도나 케이팝(대중음악)이 유명해진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 자만할 때는 아닌 것 같다. 동·서양 차이를 논하기는 좀 그렇지만 솔직히 외국인이 케이팝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면도 있다. 이제 밑바닥부터 내실을 다지는 논의들이 진행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 (아이돌 음악 중심의) 케이팝 한류가 무너지면 어쩔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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