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엘리엇, 차익 노리며 무차별 공세…ISD 카드도 만지작
입력 2015-06-09 17:43  | 수정 2015-06-09 20:20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낸 가처분에는 다음달 17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의안이 통과되지 못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가처분 신청은 본안 판결이 확정되기 이전에 잠정적으로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요청을 말한다. 당사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고 집행 정지로 인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울 때 받아들여진다. 가처분 여부는 통상적으로 신청한 지 1~2주일, 길어도 한 달 이내 결정된다.
국내에서는 엘리엇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자본시장법에 근거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비율이 정해졌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사회 결의가 이뤄진 만큼 주주총회 소집 통지를 막거나 주총에서 합병 결의안 채택을 저지할 하등의 근거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수·합병(M&A) 업계 관계자들은 엘리엇이 노리는 목적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일단 국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를 제기하고 향후에는 자사 소재지인 미국 법원이나 삼성물산 주식예탁증서(DR)가 상장된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마디로 무차별적인 법적 공격을 시도할 것이란 분석이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 대상 국가의 법령이나 정책으로 피해를 볼 경우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한 분쟁 해결 제도다.

엘리엇이 지난 4일 삼성물산 지분 공시부터 이날 가처분 신청에 이르기까지 보인 일련의 행보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전략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는 "다른 헤지펀드들의 경우 순차적으로 강도를 높이는 것이 보통인데 법적 소송전에 강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일반적인 순서를 뛰어넘어 동시다발적으로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엇 설립자인 폴 싱어 회장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변호사로 법적 소송에 매우 능숙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소송과 더불어 추가적으로 삼성물산을 압박할 카드를 제시하면서 힘들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것이 사외이사 등 경영진 추가 선임 또는 교체 요구다.
삼성물산 경영진을 대상으로 '배임' 혐의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회사를 '헐값'으로 넘겼다는 논리다. 미국에서는 M&A 과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소송이다.
다음달 주총에서 특별 결의 사안인 합병 승인 안건이 통과되려면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과 발행 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삼성물산 주식 17%에 해당하는 1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청구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5만7234원)보다 삼성물산 주가가 훨씬 높다는 점에서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이 합병 무산에 따른 주가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 또 엘리엇이 향후 주가 흐름을 봐가며 차익을 챙기고 발을 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에서의 경영권 분쟁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엘리엇 측이 삼성전자 지분을 일정 부분 취득한 후에 다른 외국인과 연계해 배당 확대, 이사진 교체, 회계장부 열람, 임시주총 소집 등 다양한 요구를 하며 삼성을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나 기자 / 용환진 기자 / 이현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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