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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균의 핀포인트] 벤치클리어링에 대한 이해, ‘反폭력’의 의미
입력 2015-06-02 12:39  | 수정 2015-06-02 14:37
벤치클리어링의 출발은 비신사적인 플레이, 폭력적인 플레이에 대한 반발이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폭력"이라는 룰을 지켜내야 한다. 사진=MK스포츠 DB
선수는 인간으로서의 도덕 이외에 하나의 규범을 더 갖게 된다. 스포츠인으로서의 도덕이다. 경기장 내에서의 도덕은 때론 일반인들의 도덕과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벤치클리어링이다.
일상을 배경으로 옮겨놓는다면 벤치클리어링은 집단 폭력의 모습이 된다. 그러나 그라운드 위에서의 벤치클리어링은 많은 경우, 그 반대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 비신사적인 플레이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나는 벤치클리어링은 폭력에 대한 정화, 과열된 긴장감의 전환을 위한 장치로 쓰이기 때문이다. 벤치를 박치고 ‘나가 싸우라는 뜻이 아니고, ‘(비신사적인 플레이에) 항의하라 ‘(팀 동료를) 보호하라는 의미다.
이 의미를 잘 알아야 선수들은 적절한 모습으로 벤치클리어링에 가담할 수 있다. 벤치클리어링이라는 폭력이 그라운드에서 용인되는 이유는 비신사적인 플레이, 과열된 승부욕에 대한 반발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비록 대치와 드잡이의 형태를 띠더라도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폭력이라는 아이러니한 룰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벤치클리어링을 비교적 정형적인 형태로 갖고 있는 스포츠는 야구와 아이스하키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경기에서 볼 수 있는 벤치클리어링의 1단계 모습은 선수들이 일제히 스틱을 땅에 내려놓는 것이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위협구를 당한 타자는 배트를 일단 땅에 내던진 뒤 마운드로 향하고, 투수는 일단 글러브와 공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상대를 맞는다. 이런 게 바로 규칙에는 없어도 우리끼리는 지켜야 하는 룰이다.
최근 KBO에서는 벤치클리어링 동안에 공이 그라운드로 날아들거나, 경기 후 벌인 양팀간의 신경전 와중에 더그아웃으로 배트가 던져지는 황망한 사태들이 있었다.
야구인의 한명으로서 너무 안타깝고, 우리 선수들이 무엇을 배우지 못했고, 우리 지도자들이 무엇을 가르치지 못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벤치클리어링은 싸우는 사람들보다 말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은 게 정상적이다. 모두가 맨손이어야 하며, 모두가 지금 벌이고 있는 행동의 ‘목적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깔끔해야 하고, 길지 않아야 한다. 서로의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듣고, 화끈하게 붙었을 때처럼 화끈하게 떨어져야 한다. 벤치클리어링의 결과로 우리 팀의 결속력, 응집력을 다져야 하고, 페어플레이에 대한 경각심, 의지를 새롭게 해야 한다.
스탠드의 야구팬들이 그라운드의 벤치클리어링을 봐주는 이유는 이 집단행동의 목적에 대해 이해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 행동의 형태가 최소한의 룰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또 다른 폭력을 제한하는 암묵적인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믿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도구를 들고 덤비는 선수가 나타난다면, 이는 팬들의 믿음에 대한 배신이다. 벤치클리어링이라는 문화를 납득해준 그라운드 밖의 사람들보다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이 더욱 이 집단행동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꼴이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지도자들에게, 고참들에게 아직 더 많이 배워야 하는 야구, 스스로 더 많이 깨우쳐야 하는 야구가 있음을 우리 선수들은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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