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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韓 취재단 두 번 놀라게 한 가수 박혜경
입력 2015-06-01 08:18  | 수정 2015-06-02 18:12
사진=조보근(c-company 제공)
[베이징(중국)=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두 번 놀랐다. 중국에 진출한 가수 박혜경(41) 이야기다. 결론부터 고백하면 실망은 의문으로 이어졌고, 의문은 곧 놀라움이 됐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희망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한 마음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새삼 깨달았다.
박혜경은 지난 30일 중국 베이징 산리툰에 있는 인터내셔널 카페 '그루브(groove)'에서 쇼케이스를 열고 무대를 꾸몄다. 그의 중국어 싱글 '안녕'을 들려주는 자리였다. 이 노래는 6월 중 중국에서 정식 발표될 예정이다.
사진=조보근(c-company 제공)
현장 무대는 초라했다. 카페 한 귀퉁이에 마련된 작은 공간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라이브 카페 수준이다. 카페 자체는 고급 시설이었으나 주변이 개방돼 산만했다. 신곡을 소개하는 감상회 자리로서도 부적합했다.
무대 앞쪽에 자리잡은 취재석을 제외하면 일반 카페 손님과 일부 팬들이 뒤섞였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사람들의 저마다 대화 소리가 시끄럽다. 그의 음악에 집중하기 어려워 보였다. 당황스러웠다. 멀리서 한국 기자단을 초청했던 그다. 여느 아이돌 그룹처럼 대형 프레스 투어는 아니지만 15개 매체가 1박2일로 함께 했다.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내용을 꾸며 보도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안타까웠다. '그래도 박혜경인데….' 내년이면 데뷔 20주년이다. 박혜경은 1997년 혼성밴드 '더더' 보컬로 데뷔해 '딜라이트' '내게 다시' '이츠 유' 등 히트곡을 냈다. 이후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고백' '주문을 걸어' '하루' 다수곡으로 사랑받았다.
사진=조보근(c-company 제공)
'그가 이처럼 소박한 무대에 서면서 한국 취재진을 왜 초청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다른 아티스트는 본인의 화려한 무대와 인기를 과시하기 위해 기자단을 초청한다. 이날 쇼케이스에 앞서 채림·가오즈치 부부, 김건모, 홍석천 등의 영상 인사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박혜경의 이력을 떠올리면 난감할 지경이었다.
박혜경은 원흠(아오이 소라가 속한 그룹 '잼' 한국인 멤버)과의 듀엣 중국어 리메이크곡 '그대안의 블루'로 쇼케이스 문을 열었다. 이어 한 곡 한 곡 자신이 부를 노래를 소개하며 '레몬트리' '고백' '너에게 주고 싶은 세가지' '예스터데이' '주문을 걸어' '레인(rain)' 등을 들려줬다. SBS '룸메이트'에 얼굴을 비췄던 중국 유명 가수 공링치(제프)와의 특별무대도 꾸며졌다. 박혜경의 중국어 버전 '안녕'을 비롯해 앙코르곡 '연애해볼까'를 부를 때 공연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사진=조보근(c-company 제공)
현장에 처음 도착해 가졌던 기자의 의문이 풀렸다. 기우였다. 그는 좌중을 압도하는 사운드와 매력적인 음색으로 귀를 사로잡았다. 노래의 주요 후렴구 멜로디를 가르쳐주며 객석의 호응을 유도했다. 관객과 눈을 맞추며 리듬을 타는 박혜경에게 하나 둘 빠져들었다.
다만 과거의 박혜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난 2013년 성대 결절 수술을 받은 그 후유증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아서 살짝 불안했다. 강약 조절이 필요한 노래에선 미묘한 감정선의 기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소한 문제였다. 미리 준비한 MR(Music Recording)이 잠시 나오지 않아 박혜경의 무반주 가창을 들어야 할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중국 취재진은 셀프 카메라를 찍기도 하며 그의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거나 즐겼다. '매의 눈과 귀'로 현장을 기록하기 바쁜 일부 한국 취재단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박혜경은 한국 취재단의 나쁜 습관마저 바꾸어놓았다. 그가 취재석 맨끝 테이블에 뛰어 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카페 내 일반 손님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서기 위한 그의 노력이자 흥이 넘쳤다. 기자는 잠시 노트북을 접고 그제서야 온전히 그를 바라봤다. 노래도 노래지만 객석은 그의 무대 매너와 열정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는 썰렁했던 장소조차 뜨겁게 끓어오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사진=조보근(c-company 제공)
이것이 그가 진정 바랐던 무대였다. 박혜경은 "불과 1주일 전까지 '카페에서의 쇼케이스는 안 된다'고 스태프들이 나를 만류했었다. 좀 더 크고 울림이 있는 공간에서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밀어붙였다. 스태프들을 설득해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했다. "요즘 중국에서는 한국 가수들의 소식을 많이 접하고 있다.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는 게 그 스스로의 말이다. "중국에서 박혜경을 아는 사람은 불과 몇 분밖에 없다." 그럼에도 다수 관객이 그의 이날 음악을 듣고 삼삼오오 몰려든 것이다.
그는 "(나의 중국 진출을 두고) 주위에서 '어렵다. 안 된다 힘들다'는 말을 여전히 한다. 하지만 나는 (돈을 벌려는) 큰 목적이 없다. 이렇게 크고 작은 카페나 갤러리, 자연에서 여러분과 자주 만나겠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내 나름의 방식대로, 여러분에게 한걸음씩 다가서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사진=조보근(c-company 제공)
박혜경에게 중국은 기회의 땅이다. 소위 '대박'을 실현하기 위한 나라가 아니다. 그간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가수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낀 적도 있다. 그 시기 목에 병이 왔고, 중국을 여행했다. 그는 수술이 두려웠다. "차라리 노래를 부르지 말자는 생각도 했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중국 여성 팬을 만났다. 그녀의 스마트폰 속에는 박혜경의 노래가 가득했다.
박혜경은 그제서야 마음을 다잡고 한국으로 돌아와 수술을 받았다. 쉽지 않았다. "수술 후 옛날처럼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정말 가수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배낭을 메고 중국을 여행하며 친구들을 만들었다."
물론, 지난해 12월 한국에서 중국 진출 기자회견을 열 때와 상황은 또 달라졌다. 당시 장나라의 아버지이자 나라짱닷컴 대표 주호성이 그를 도왔던 터다. 주호성은 박혜경을 중국의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맥스스타그룹에 추천했다. 맥스스타그룹은 장나라의 중국 음반 유통과 엑소(EXO)의 첫 중국 진출 쇼케이스를 진행했던 회사다.
지금 박혜경은 소속사가 없다. 매니지먼트를 해주는 곳도 없다. 오직 박혜경 자신의 힘으로 중국 대륙 땅을 밟고 있다. 대신 친구들이 그를 위해 하나 둘 돕고 있다. 순수 중국인 멤버로만 구성된 밴드, 미디어·공연 진행을 돕고 있는 한 젊은 여성 벤처 사업가 등 모두 각자 생업에 종사하면서 박혜경을 물심양면 도왔다.
그들은 입을 모았다. "머리 보단 마음, 계산이 아닌 본능이다. 박혜경과 그의 노래에서 진심이 느껴진다"고. 박혜경은 중국에서 한류스타가 아니라 가수다. 진짜 노래를 부르는 사람 말이다. 누구보다 행복한.

fac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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