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래터 FIFA 회장 5선 성공…2019년까지 임기
[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국제축구연맹(FIFA) 제프 블래터 회장(스위스)이 ‘축구대통령 직함을 유지했다. 뇌물 스캔들 수사로 압박을 했음에도 5선에 성공했다.
블래터 회장은 30일(한국시간) FIFA 총회 중 열린 회장 선거에서 알리 빈 알 후세인 FIFA 부회장(요르단)을 제치고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 133표를 획득, ⅔인 140표 이상을 얻지 못해 2차 투표를 치러야 했으나 알 후세인 부회장이 기권했다.
이로써 블래터 회장은 주앙 아벨란제 회장(1974~1998년·브라질)에 이어 장기집권 체제를 갖췄다. 블래터 회장의 임기는 2019년까지. 1998년 아벨란제 회장의 오른팔로서 후임이 된 뒤 21년간 축구대통령으로 군림하게 된다.
밖에서 본 블래터 회장의 입지는 흔들리는 듯 했다. 뇌물스캔들이 또 터진 것. 사실 FIFA의 부정부패 의혹은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그 가운데 직접 수사로 진행된 건 처음이었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이 FIFA 총회 직전 FIFA 집행위원을 비롯해 스포츠마케팅회사 등 고위관계자를 체포하면서 블래터 회장을 옥죄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단체 보이콧 하겠다는 유럽축구연맹(UEFA)을 포함해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루이스 피구 등이 블래터 회장의 5선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밝혔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무소불위의 FIFA에 타격을 줬고, 블래터 회장의 힘이 예년 같지 않다고 해도 블래터 회장의 막강한 위상은 다르지 않았다.
1차 투표에서 판세가 갈리지 않았다고 하나, 블래터 회장은 알 후세인 부회장(73표)보다 60표를 더 얻었다. 2배 가까운 표 차이다. 2차 투표를 하나마나였다. 알 후세인 부회장은 ‘백기를 들었다.
지난 4번의 회장 선거를 돌이켜봐도 블래터 회장에 위기의식을 줄 정도로 박빙의 싸움은 아니었다. 단독 후보로 출마한 2007년, 2011년 선거를 제외하고 블래터 회장은 1998년, 2002년, 2015년 ‘대항마와 경쟁을 치렀다.
스웨덴 출신 레나르트 요한손 전 UEFA 회장(1998년), 카메룬 출신 이사 하야투 전 아프리카축구연맹(CAF) 회장(2002년)이 대권에 도전했지만, 완패했다. 요한손 회장이 그나마 1차 투표에서 80표-111표로 격차가 크지 않았으나 2차 투표 직전 중도 사퇴했다.
블래터 회장이 5번째 선거의 1차 득표율은 63.6%였다. 여전히 높은 지지율이었다. 알 후세인 회장을 중심으로 블래터 회장에 맞설 후보를 단일화했지만, 그 단단한 벽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회장 선거에서 각국 협회는 투표권 1장만 행사할 수 있다. 축구계의 영향력과는 별개다. 다수의 지지표를 최대한 확보하는 블래터 회장의 철저한 전략이 성공했다는 것. 알 후세인 회장은 CAF를 비롯해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아시아축구연맹(AFC)의 표심을 얻지 못했다. 특히, 안방이라 할 수 있는 AFC에서조차 외면당했다.
뒤집어 많은 나라가 ‘부도덕할 지라도 블래터 회장을 응원했다. 못한 점도 있으나 그보다 잘한 점이 더 많다는 주장이다. 월드컵 대륙 순환 개최를 비롯해 약소국의 축구지원사업인 골 프로젝트, TV중계권료 및 대형 스폰서십 체결로 안정적인 재정 확충 등으로 높은 지지율을 받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회장 선거 직전 터진 FBI의 수사가 역설적으로 블래터 회장을 도와준 꼴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친 블래터 회장 진영이 똘똘 뭉쳤다는 것. 게다가 비리의혹에 시달리는 각국 협회는 이를 감추지 위해서 블래터 회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다는 이야기다.
FIFA는 과거에도 뇌물 스캔들이 터졌다. 2002년 회장 선거에서는 미셸 젠 루피넨 당시 사무총장이 블래터 회장의 공금 유용혐의를 폭로하기도 했다. UEFA는 FIFA 탈퇴라는 압박 카드를 쓰기도 했으나 블래터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블래터 회장 세력의 결집력만 더욱 키웠을 뿐이다.
13년 만에 블래터 회장의 연임에 관한 찬반이 누구를 회장으로 뽑느냐의 선거였지만 13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판박이였다.
더욱이 FIFA는 아벨란제 회장 시절부터 불투명하면서 독단적인 행정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축구계가 의외로 보수적인 성향이 크기도 했다. 개혁보다 보수에 한 표를 더 행사했다. 요한손 전 회장, 아야투 전 회장 모두 개혁파 세력이었다. 각국 협회는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감춰가기를 희망했다.
예상과 달리 회장 선거는 1차 투표에서 끝나지 않았다. 블래터 회장의 ‘압승이라는 표현을 쓰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반대 진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해도, 블래터 회장의 지지 세력은 변함이 없었다. 블래터 회장의 ‘승리라는 표현도 틀리지 않았다. 무소불위의 힘을 더 이상 쓰기 어려워졌지만, 블래터 회장의 축구계에서 여전히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게 다시 한 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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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국제축구연맹(FIFA) 제프 블래터 회장(스위스)이 ‘축구대통령 직함을 유지했다. 뇌물 스캔들 수사로 압박을 했음에도 5선에 성공했다.
블래터 회장은 30일(한국시간) FIFA 총회 중 열린 회장 선거에서 알리 빈 알 후세인 FIFA 부회장(요르단)을 제치고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 133표를 획득, ⅔인 140표 이상을 얻지 못해 2차 투표를 치러야 했으나 알 후세인 부회장이 기권했다.
이로써 블래터 회장은 주앙 아벨란제 회장(1974~1998년·브라질)에 이어 장기집권 체제를 갖췄다. 블래터 회장의 임기는 2019년까지. 1998년 아벨란제 회장의 오른팔로서 후임이 된 뒤 21년간 축구대통령으로 군림하게 된다.
밖에서 본 블래터 회장의 입지는 흔들리는 듯 했다. 뇌물스캔들이 또 터진 것. 사실 FIFA의 부정부패 의혹은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그 가운데 직접 수사로 진행된 건 처음이었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이 FIFA 총회 직전 FIFA 집행위원을 비롯해 스포츠마케팅회사 등 고위관계자를 체포하면서 블래터 회장을 옥죄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단체 보이콧 하겠다는 유럽축구연맹(UEFA)을 포함해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루이스 피구 등이 블래터 회장의 5선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밝혔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무소불위의 FIFA에 타격을 줬고, 블래터 회장의 힘이 예년 같지 않다고 해도 블래터 회장의 막강한 위상은 다르지 않았다.
1차 투표에서 판세가 갈리지 않았다고 하나, 블래터 회장은 알 후세인 부회장(73표)보다 60표를 더 얻었다. 2배 가까운 표 차이다. 2차 투표를 하나마나였다. 알 후세인 부회장은 ‘백기를 들었다.
지난 4번의 회장 선거를 돌이켜봐도 블래터 회장에 위기의식을 줄 정도로 박빙의 싸움은 아니었다. 단독 후보로 출마한 2007년, 2011년 선거를 제외하고 블래터 회장은 1998년, 2002년, 2015년 ‘대항마와 경쟁을 치렀다.
스웨덴 출신 레나르트 요한손 전 UEFA 회장(1998년), 카메룬 출신 이사 하야투 전 아프리카축구연맹(CAF) 회장(2002년)이 대권에 도전했지만, 완패했다. 요한손 회장이 그나마 1차 투표에서 80표-111표로 격차가 크지 않았으나 2차 투표 직전 중도 사퇴했다.
블래터 회장이 5번째 선거의 1차 득표율은 63.6%였다. 여전히 높은 지지율이었다. 알 후세인 회장을 중심으로 블래터 회장에 맞설 후보를 단일화했지만, 그 단단한 벽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회장 선거에서 각국 협회는 투표권 1장만 행사할 수 있다. 축구계의 영향력과는 별개다. 다수의 지지표를 최대한 확보하는 블래터 회장의 철저한 전략이 성공했다는 것. 알 후세인 회장은 CAF를 비롯해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아시아축구연맹(AFC)의 표심을 얻지 못했다. 특히, 안방이라 할 수 있는 AFC에서조차 외면당했다.
뒤집어 많은 나라가 ‘부도덕할 지라도 블래터 회장을 응원했다. 못한 점도 있으나 그보다 잘한 점이 더 많다는 주장이다. 월드컵 대륙 순환 개최를 비롯해 약소국의 축구지원사업인 골 프로젝트, TV중계권료 및 대형 스폰서십 체결로 안정적인 재정 확충 등으로 높은 지지율을 받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회장 선거 직전 터진 FBI의 수사가 역설적으로 블래터 회장을 도와준 꼴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친 블래터 회장 진영이 똘똘 뭉쳤다는 것. 게다가 비리의혹에 시달리는 각국 협회는 이를 감추지 위해서 블래터 회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다는 이야기다.
FIFA는 과거에도 뇌물 스캔들이 터졌다. 2002년 회장 선거에서는 미셸 젠 루피넨 당시 사무총장이 블래터 회장의 공금 유용혐의를 폭로하기도 했다. UEFA는 FIFA 탈퇴라는 압박 카드를 쓰기도 했으나 블래터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블래터 회장 세력의 결집력만 더욱 키웠을 뿐이다.
13년 만에 블래터 회장의 연임에 관한 찬반이 누구를 회장으로 뽑느냐의 선거였지만 13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판박이였다.
더욱이 FIFA는 아벨란제 회장 시절부터 불투명하면서 독단적인 행정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축구계가 의외로 보수적인 성향이 크기도 했다. 개혁보다 보수에 한 표를 더 행사했다. 요한손 전 회장, 아야투 전 회장 모두 개혁파 세력이었다. 각국 협회는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감춰가기를 희망했다.
예상과 달리 회장 선거는 1차 투표에서 끝나지 않았다. 블래터 회장의 ‘압승이라는 표현을 쓰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반대 진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해도, 블래터 회장의 지지 세력은 변함이 없었다. 블래터 회장의 ‘승리라는 표현도 틀리지 않았다. 무소불위의 힘을 더 이상 쓰기 어려워졌지만, 블래터 회장의 축구계에서 여전히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게 다시 한 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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