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NPL시장 꼴찌 KB운용의 반란
입력 2015-05-17 17:40  | 수정 2015-05-17 20:13
국내 부실채권(NPL) 시장에 이변이 발생했다. 이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이어가던 유암코(연합자산관리)가 설립 이래 최초로 NPL 인수에 실패했다. 반면 지난해 NPL을 한 건도 인수하지 못했던 KB자산운용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전통의 강자 유암코가 흔들리는 것은 NPL 시장에 최근 자산운용사 저축은행 등 새로운 투자자들이 뛰어들면서 낙찰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저금리 기조 아래 NPL이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향후 NPL 인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유암코는 올해 1분기 시중은행들이 내놓은 NPL 중 단 한 건도 낙찰받지 못했다. 유암코는 우리·기업·신한·농협은행이 내놓은 총 7건, 6023억원 규모 NPL 입찰에 모두 응찰했지만 입찰 가격에서 밀려 고배를 마셨다. 반면 KB자산운용은 같은 기간 3건, 총 2554억원에 상당하는 NPL 인수에 성공해 시장점유율 1위(42.4%)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2009년 설립된 유암코는 국내 NPL 시장점유율 40~50%를 꾸준히 유지해 온 자타 공인 1등 회사다. 유암코의 독점적 지위는 이미 지난해부터 흔들리는 조짐을 보였다. 지난해 유암코의 NPL 인수 금액은 전년에 비해 무려 1781억원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9.9%, 당기순이익은 45.3% 감소했다.

유암코 투자 성향이 위축된 것은 최근 자산운용사 저축은행 등 새로운 투자자들이 연이어 NPL 시장에 뛰어들면서 낙찰가율은 올라가고 마진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분기 NPL 낙찰가율은 72.5~99.3% 수준으로 유암코가 제시한 가격에 비해 3~5%가량 높았다. 낙찰가율이란 NPL 원금 대비 NPL투자회사가 지불한 인수가격 비율로, 이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비싼 값을 지불하고 NPL을 샀다는 의미다. 유암코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들이 우리가 책정한 적정가에 비해 다소 높은 가격을 써내면서 잠시 시장에서 밀린 감은 있다"며 "1분기에 나온 물량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체 시장점유율은 연말에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암코가 주춤한 사이 KB자산운용이 우리·기업은행이 내놓은 NPL을 싹쓸이하며 시장에 '핫 플레이어'로 급부상했다. KB자산운용은 지난해 핵심 인력이 연이어 이직하면서 고전했지만 올해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매년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면서 NPL 시장에서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는 추세다. 여러 번 응찰에도 고전을 면치 못한 화인파트너스는 1년여 만에 농협은행이 내놓은 971억원 규모 NPL을 인수했다. 지난해 NPL 전문투자사로 변신을 선언한 외환F&I도 신한은행이 내놓은 541억원 규모 NPL을 낙찰받는 데 성공했다. 반면 지난해 점유율 3위를 차지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SBI저축은행은 시효가 만료된 부실채권 판매 논란에 휩싸이면서 자취를 감췄다. 외국계 투자자로는 유일하게 꾸준히 NPL 시장에 참여해온 일본 신세이뱅크는 최근 한국 시장에서 아예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NPL 업계 관계자는 "매년 새로운 업체가 등장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가 기대만큼 수익이 나지 않으면 발을 빼면서 시장 자체가 어지러워지는 측면이 있다"며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꾸준하게 투자하는 기관이 많아져야 NPL 시장이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NPL을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장 규모는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07년 12조원에 불과했던 국내 은행의 NPL 정리 실적은 2013년 24조원을 기록했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NPL시장이 기업 구조조정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풀을 확대해야 한다"며 "1조원 이상 투자능력을 보유한 전문 투자자를 추가 육성하고 제2금융권 참여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지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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