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가진 자들의 축제’ 베니스비엔날레에 초대받은 마르크스
입력 2015-05-07 15:48 

화폐 소유자는 자본가로서 앞장서 걸어가고, 노동력의 소유자는 그의 노동자로서 그 뒤를 따라간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인간 자신의 산물인 기계 등 생산물이 인간을 지배한다.”
지난 6일(현지시간) 오전 10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 이탈리아관 ‘아레나로 이름 붙여진 무대에 여전히 논쟁적이면서도 자본주의 부작용과 폐부를 일찌감치 예견한 칼 마르크스 역작 ‘자본론(1867년작)이 울려 퍼진다. 두 명의 연극 배우가 무대와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론을 낭독하고 있다. 하루에 네 번 무대에서 서는 배우들은 7개월동안 성가를 부르듯 자본론 읽기를 계속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아이작 줄리앙의 무대 실험이자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거창한 주제를 들고 나온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의 기획 의도가 집약적으로 녹아 있다.
120년간 ‘가진 자들의 무대였던 베니스비엔날레에 마르크스가 초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富)의 양극화와 불확실성, 불안이 증대되는 시대 사회정치경제적인 이슈에 현대예술이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일반 개막을 사흘 앞둔 6일 언론과 VIP들에게 공개된 베니스비엔날레는 퍼포먼스의 대약진이라 할만큼 다양한 무대실험이 이뤄졌다. 한때 퍼포먼스라 하면 억압된 성과 신체를 해방시키기라도 하듯 여성 예술가가 나체로 거리를 활보한다거나 사회의 금기를 깬 행위 예술이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퍼포먼스 실험이 진행 중이다. 자본론 낭독이 이뤄지는 아레나에서는 다양한 관객 참여 퍼포먼스와 스크리닝 프로그램, 라이브 낭독회도 이어진다.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배우들의 목소리들이 비엔날레 공간을 휘젓는다.
베네치아 아르세날레에서도 열리고 있는 본전시에 참가한 김아영(36)은 보이스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다. 그는 현지 성마르크성당에서 노래 하는 7명의 성악가를 섭외해 1980년대 중동 건설 붐에 대한 자신의 개인사와 한국사, 세계사를 써내려갔고 이를 읽게 하고 노래를 하게 한다. 노래의 정형성을 깬 퍼포먼스는 18분에 걸쳐 이어지고 작가는 무대 앞에서 이를 지켜본다.

서울 출신인 작가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와 삼촌들이 10년간 중동에 오일달러를 벌러 갔다. 당시 학교 친구들도 비슷한 환경이었다”며 중동 건설 붐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면서도 세계사와 만나는 흥미로운 지점이었다”고 말했다.
읽는 행위는 찰나의 덧없는 순간으로 흩어지지만 새삼 인간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묵직하고 근원적인 힘을 일깨워준다. 김아영 뿐만 아니라 한 스페인 작가도 두명의 퍼포머를 고용해 한 명은 자크 라캉의 책을 읽고, 다른 한명은 작가가 그린 드로잉대로 다양한 제스처를 취한다.
이숙경 큐레이터는 퍼포먼스는 여전히 미술관에서 흔쾌히 소장하기 어려운 시간예술이다. 비엔날레에서 다양하게 전시 형태로 보여지는 것은 최근의 추세”라고 평가했다. 다양한 매체 실험을 거친 사진과 비디오에 이어 퍼포먼스가 새로운 형식적인 실험이 가능한 영역으로 부상한 것이다.
본전시에 참여한 남화연(36)도 ‘욕망의 식물학이라는 영상 작업을 선보이는데 여기에도 벌의 몸짓을 흉내낸 연극적인 퍼포먼스가 담겨있다. 작가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값이 이상 폭등한뒤 거품이 꺼진 현상에 주목했고, 2010년 뉴욕 증시의 대폭락과도 연계시켰다. 그는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욕망한다. 대상은 바뀌지만 욕망하는 상태는 영원하다. 이것이 미래에 대한 동력이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장편 영화가 통째로 비엔날레 공간에 들어온 것도 이색적이다. 일각에서는 베니스비엔날레와 베니스영화제가 합쳐지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할 정도다. 그만큼 영화와 순수미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 임흥순이 지난해 제작한 95분짜리 영화 ‘위로공단이 이번 비엔날레 본전시에 소개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비엔날레는 총 89개의 국가관 전시와 53개국 136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본전시 두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한국 작가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다. 11월 22일까지.
[베네치아 =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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