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연기할 시간 부족한데 슬럼프는 제게 사치죠”
입력 2015-05-07 15:47  | 수정 2015-05-08 16:00

7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손현주(50)를 기다리는데 밖에서 여고생들이 꺄아악”하고 내지르는 음성이 들렸다. 이내 들어온 손현주는 소풍 나온 여고생들을 마주쳤는데 알아보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뒤늦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560만명을 모은 ‘숨바꼭질 이후 2년만에 스크린에 컴백했다. 14일 개봉하는 ‘악의 연대기(백운학 감독)에서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후 이를 은폐하기 위해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형사반장 최창식역이다.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안으로 고통받는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그는 눈동자만으로 두려움과 공포, 죄의식을 드러낸다.
(잘못을)감춰야 하고, 거짓말을 해서 더 큰 일이 벌어져요. 비극의 악순환이죠. 몰입을 위해 촬영 중 동료 배우들과도 말을 섞지 않고 혼자 있었습니다. 외로운 시간이었어요.”
최 반장이 죽인 시체를 누가 경찰서 앞에 매달아놓으면서 미스테리는 시작된다. 영화는 은폐하려는 최 반장, 그를 지켜보는 의문의 남자의 팽팽한 대립 속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거듭하면서 힘있게 돌진한다.
되도록이면 어떻게 감쪽같이 감출 수 있을까 고민했죠. 제가 자신한테 들킬까봐 (끝을) 보지 않고 연기했어요.”
최 반장은 성공을 위해 죄악을 은폐하지만, 이 배우는 드러내놓고 살아왔다. 비오는 날을 제외하곤 자전거를 타고 방송국에 ‘출근했고, 취미인 등산할 때는 지하철을 탄다.

동네(서초동)에 오시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게 저란 사람입니다. 하하.”
이웃집 아저씨같은 소탈한 웃음이었다. ‘서민 연기의 시작을 알린 주정남(1996년 드라마 ‘첫사랑)의 서글한 얼굴이 겹쳐졌다. 네모난 턱, 쌍꺼풀 없는 눈…. 요즘 시대의 ‘미남은 아니다. 그는 외모에 주눅든 배우들에게 자신과 고창석, 마동석의 사례를 들곤 한다.
제 얼굴을 사랑합니다. 평범한 얼굴이기 때문에 범상치 않은 것이 나와요. 어떤 역이 와도 이 얼굴로 최선을 다할 겁니다.”
1991년 KBS 탤런트 공채로 연기를 시작한 그가 24년째 고수하는 습관이 있다. 항상 촬영장에 먼저 오는 것이다. ‘악의 연대기 54회 촬영 동안 그는 한번도 늦은 적이 없다.
누가 저보고 연기하라고 시켰나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데 불평 불만 가지면 안되죠. 남의 돈 갖고 촬영하는데 성심 성의껏 찍자고 항상 약속합니다. 후배들이 힘들다고 하면, 과감하게 하지 말라고 해요. (연기할) 시간이 없는데 무슨 슬럼프입니까.”
간절함은 지난해 6월 갑상선암 제거 수술을 받은 후 더 커졌다.
(진단받았을 때)연기를 더 하고 싶은데, 조금 더 해야하는데 막막했어요. 이제 정답을 찾아가고 싶은데, 좀 더하면 안될까 싶었죠. 언제 죽을지 모르니 사는 동안 재미있게 살아야죠.”
제작진에 따르면, 이날 인터뷰는 오전 10시에 시작했지만 그는 오전 8시20분부터 나와서 준비를 했다고 했다. 매 순간 전력을 다하겠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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