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M+리뷰] 인간의 위선적인 삶, 그리고 불현 듯 찾아온 변화…‘윈터슬립’
입력 2015-05-06 17:18 
사진=포스터
한 사내의 성찰을 이토록 날카롭게 그려낼 수 있을까. 평생을 자신의 신념, 고집이 옳은 것이라 믿어왔던 사내가 몇 가지 일을 계기로 변화한다. 그 변화를 위한 시작이 터키의 광활한 자연풍광과 어우러져 웅장하다.


[MBN스타 정예인 기자] 영화 ‘윈터슬립이 위선전인 한 사내의 기로를 그려낸다. 이 사내는 주변인의 질타, 조언을 통해 자신의 삶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깨닫고, 삶이란 무엇인지 다시 성찰한다.

‘윈터슬립은 196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남자의 작지만 큰 변화를 말없이 지켜본다. 오셀로 호텔의 주인인 아이딘(할룩 빌기너 분)은 함께 지내는 가족들과 끊임없는 말다툼을 벌인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고, 상대는 그런 그에게 상처받아 침묵을 고수하는 것으로 받아치는 게 일상이다.

아이딘은 상업적인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연극배우 출신이다.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오셀로 호텔을 관리하고, 지방신문에 때때로 어려운 용어를 섞은 칼럼을 기고하고, 마을의 가구에 세를 놓는다. 겉으로는 고고하고 기품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이딘은 위선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 집에는 말이 없나요?”라는 관광객의 물음에 단 번에 비싼 말을 사기도 하고,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의 편지를 읽으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행동으로 누군가를 돕거나 따뜻하게 안는 일은 할 줄 모른다. 아이딘은 그저 자신이 가진 독선적인 사고방식이 ‘옳은 것이라 믿는다.

그런 아이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두 인물이 있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 니할(멜리사 소젠 분)과 여동생 네즐라(드멧 앳백 분)다. 아내는 직접 기부활동을 하면서, 아이딘의 삶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지적하고, 여동생은 아이딘과 정반대의 이데올로기를 강력하게 피력하고 ‘끝장토론을 펼치는 것으로 아이딘의 위선을 꼬집는다.

이 영화는 그저 편안하게 바라보고 향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네즐라와 니할, 아이딘과 니할, 아이딘과 네즐라 등 두 사람이 펼치는 말다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이런 치열한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 생각게 한다. 또 네즐라와 니할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아이딘을 보고 있노라면 독선적인 인물이 주는 ‘불편함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진=스틸컷


영원불멸할 것 같던 아이딘은 결국 네즐라, 니할의 공격에 무너지고 만다. 네즐라는 아이딘과 이야기를 나누다 끝내 내가 이런 행복하지 않은 곳에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고, 니할은 아이딘이 자신을 두고 떠나줄 것을 권한다. 이후 아이딘은 계속해서 오셀로에 머무를 이유를 찾지 못하고, 결국 이들을 피해 이스탄불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친다고 해서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가 소강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딘은 이스탄불이라는 일정한 목적지가 있었지만, 끝내 그곳에 다다르지 못한다. 여행의 길목에 폭설이 내려 옴짝달싹 못한다든가, 갑자기 행로를 바꿔 친구네 집으로 향하는 일이 생긴다. 이는 아이딘이 무의식 중에 이스탄불로 향하는 것이 모든 일의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 이라는 걸 알아서일 터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은 ‘위선자가 아이딘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딘을 몰아세운 니할, 네즐라 역시 위선적이다. 니할은 태어나서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 없고, 기부 역시 남편 돈으로 하면서 ‘기부야 말로 삶이라고 외친다. 네즐라는 폭력을 휘둘러 남편과 이혼해놓고서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돌아가면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문일까, 세 사람이 타인에게 내뱉는 독설은 마치 자기 자신에게 하는 질책처럼 들린다.

상처받은 이들은 때때로 자신의 단점을 상대에게서 찾아내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는 자신의 내면을 방어하기 위한 일이다. 나의 잘못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보다, 남을 지적하는 것이 더 손쉬우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딘의 변화는 의미 깊다. 이미 ‘늙은 사내가 자신을 바로 바라보기로 결심한 용기를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는 7일 개봉.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