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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인터뷰] ‘배려와 존중 그리고 경청’ 김혜수, 이 배우가 사는 법
입력 2015-05-03 12:28  | 수정 2015-05-03 23:06
관객에게 애정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배우로서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배우 김혜수는 ‘믿고 보는 배우란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충무로의 보석 같은 존재다. 김혜수는 냉혹하고 비정한 세상 차이나타운의 보스 역을 맡아 필모그래피에 정점을 찍을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차이나타운


[MBN스타 최준용 기자] 배우 김혜수의 전매특허 코 찡긋 웃음은 참으로 푸근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넉살 좋게 다가가는 여유와 따뜻함이 공존했다. 톱 배우에 대한 거리감은 벌써 없어진 오래.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마음씨 좋은 이웃사람처럼 인터뷰 내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보였다. 지난 1986년 영화 ‘깜보로 충무로에 데뷔한 후 30년 간 연기를 해온 배우의 성실한 나이테를 감지할 수 있었다.

증명해 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김혜수는 한준희 감독의 신작 ‘차이나타운에서 이런 대사를 던진다. 대사에서 느낄 수 있듯 그녀는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조직의 보스로서 한 치의 망설임이나 감정의 동요가 없다. 그가 맡은 엄마 역은 비정한 세계의 보스로 군림하기 위해 여성으로서 많은 것을 포기한 인물. 김혜수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의상부터 메이크업까지 그 어느 영화보다 세심하게 준비했다. 특히 그녀는 하얗게 세어버린 거친 머리카락과 주근깨가 가득한 피부, 여기에 특수 분장을 통해 두둑한 뱃살과 엉덩이를 마다치 않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엄마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죠. ‘만만치 않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한준희 감독과 분장, 의상 팀들이 캐릭터에 외적인 부분에 대한 세밀한 논의가 있었는데 결국 서로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죠. 엄마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가 완성됐을 땐 촬영 날이 기다려지더라고요. 평소보다 분장 시간이 길어지고, 여름에 더웠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연기하면서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 대한 희열을 느꼈어요.”

‘차이나타운이 기존의 범죄 드라마와 차별되는 가장 특징은 여자가 지배하는 조직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한준희 감독은 앞서 열린 ‘차이나타운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강력하다고 믿는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어렵고 힘든 상황이 와도 또 실패를 해도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런 점이 여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오는 얘기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밝혔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 엄마는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으며, 모두가 존칭을 쓰는 존재로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누와르 장르를 참 좋아해요. 특히 범죄가 개입된 부분이 맘에 들었죠. 거기다가 여성 2명이 주체가 된 영화라 더욱 반가웠어요. 단순하게 여성들에게 많은 분량이 할애돼 좋았다고 보기 보단 두 여자를 다루는 태도가 굉장하게 낯설고 신선했죠. 정서적으로 충격 그 자체였어요.”

한준희 감독은 ‘차이나타운 엄마 역에 김혜수를 낙점했다. 그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엄마 캐릭터에는 어떤 대사와 연기 없이도 존재만으로 압도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 김혜수는 여러차례 감독의 정성어린 제안에 고심하다 출연을 어렵사리 결정했다. 이는 감독의 눈빛에서 자신에 대한 확신을 봤기 때문. 한준희 감독의 판단은 정확했다. 김혜수는 작품 속 캐릭터에 완벽하게 부합했을 뿐 아니라 연기 외적인 부분에서 현장의 버팀목 같은 존재로 맹활약했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 주, 조연 및 단역 배우는 물론 막내 스태프까지 살뜰히 챙기는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의 규모가 클 수도 있지만, 예산이 적은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열악한 환경에서 촬영하게 돼요. 저 같이 메인 배우들은 눈에 띄기 때문에 잘 챙김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대부분이죠. 한 작품을 하게 됐으니, 분량이 많고, 적고 또 기여도가 크고, 작은 건 별로 중요치 않아요. 우리는 한 팀이기 때문에 마음이 가죠. 어려운 건 아니에요. 저처럼 영화 촬영 경험이 많지 않은 분들은 자신들의 분량이 적기 때문에 대기 시간도 짧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면 얇은 한복과 버선발로 산속 추위를 견디며 장시간 서있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러면 사람의 피부가 보라색으로 변하죠. 그걸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요. 제 몸에 핫 팩이 9개가 붙여져 있으면 8개를 그 분들에게 드리면 적게나마 따듯함을 공유할 수 있잖아요. 담요나 두툼한 외투도 나눌 수 있고요.”

어릴 때 데뷔해 충무로에서 주로 메인 스트림에 있던 그가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갖고 있을까란 의문이 들 찰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매번 주연만 맡은 건 아니에요. 작은 역할도 많이 했죠. 주연과 조연이란 건 사람들이 보기 쉽게 카테고리로 정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배우는 다 똑같다고 생각하죠.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게 조금 주제넘을 수 있지만, 배우가 자신의 색깔을 나타내기 위해 기다림이 얼마나 길고 힘든지 잘 알고 있어요. 저도 영화계의 시선으로 볼 땐 메인에 서 있던 배우는 아니었죠.”

최준용 기자 cjy@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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