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2차 세계대전 당시 가라앉은 영국 증기선…5천만 달러 상당의 은화 발견
입력 2015-04-23 14:48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사진=MBN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2차 세계대전 당시 가라앉은 영국 증기선…5천만 달러 상당의 은화 발견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구조물 살펴보니..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2차 세계대전 당시 가라앉은 영국 증기선…5천만 달러 상당의 은화 발견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돼 화제인 가운데 2차 세계대전 당시 가라앉은 영국 증기선에서 5천만 달러(약 549억원) 상당의 은화가 인양돼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주도로 구성된 인양팀이 해저 5천150m에 있는 증기선 'SS 시티 오브 카이로'에서 1OO톤 가량의 은화를 건져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 깊이에 있는 침몰선에서 인양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텔레그래프는 설명했다.

'SS 시티 오브 카이로'는 2차 대전 중인 1942년 11월 4일 100톤의 은화를 싣고 인도 뭄바이를 출발해 잉글랜드로 가다가 세인트헬레나 섬 남쪽 480마일 부근에서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가라앉았다.

첫 공격부터 침몰까지 20분 가량이 걸려 증기선 승객과 승무원 302명 가운데 6명을 제외한 전원이 구명보트에 옮겨타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모두 구조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 독일 잠수함장 칼 프리드리히 메르텐이 구명보트로 다가가 완벽한 영어로 "안녕히 가십시오. 침몰시켜서 미안합니다(Goodnight, sorry for sinking you)"라고 인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3주 간에 걸친 구조작업 끝에 구명보트에 탔던 사람들 가운데 200명 가량이 안전하게 육지로 구조됐으나 104명은 구조를 기다리다 숨졌다.

영국 재무부 소유이던 은화는 배와 함께 영원히 깊은 바다에 잠들 것으로 예상됐으나 최근 영국 정부의 위탁으로 20명의 프랑스 해양학자를 포함한 인양팀이 인양작업을 벌인 끝에 70여 년 만에 다시 바다 밖으로 나오게 됐다.

한편 22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최신 3차원 입체영상 지층탐사장비를 이용해 마도 해역을 탐색한 결과, 2011년 마도 3호선(고려시대 화물선)이 발견됐던 해저 근처에서 고선박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물체가 탐지됐다고 밝혔다.

연구소 쪽은 이 구조물의 구체적인 윤곽과 실체를 파악하는 확인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작년 11월에도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선박이 발견된 바 있다.

당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바닷속 경주'로 일컫는 마도 해역을 지난 6월1일 이래 발굴조사한 결과 '마도 4호선'으로 명명한 침몰 고선박을 발견했으며 주변에서 조선시대 백자 111점을 인양했다고 5일 밝혔다.

이 선박 내부에서는 조선 초기 분청사기 2점이 발견됐다. 따라서 추후 자세한 조사와 분석이 있어야겠지만 한국 수중고고학사상 최초의 조선시대 선박 실물 출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마도 해역에서만 현재까지 태안선, 마도 1·2·3호선으로 명명한 고선박 4척을 발굴했지만 모두 고려시대 선박으로 드러났다. 조선시대에도 마도 해역에서는 무수한 배가 침몰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조선시대 선박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 확인한 마도 4호선은 길이 11.5m, 폭 6m 규모이며, 생김새는 전형적인 한국 고선박 형태를 띤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선체 내부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 4단으로 구성된 외판재가 확인됐으며, 주변에서는 화물이 물에 젖지 않도록 받침 역할을 하는 원형 통나무들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처음으로 조선시대 백자가 꾸러미로 확인됐다.

백자는 총 111점으로 발견 당시 종류별로 10점씩 포갠 상태였으며, 꾸러미 아래쪽에는 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완충재로 사용했을 볏짚도 함께 확인돼 화물로 선적됐음을 짐작케한다.

이들 백자는 종류로 보면 발, 접시, 잔, 촛대 등 모두 일상생활용기에 속한다. 특히, 백자 촛대는 발굴된 사례가 없이 전세품(傳世品)만 남아있어 도자기 가치가 특히 크다고 평가된다. 초 자체가 일반 서민이 사용하기 어려운 품목이었다.

제작 상태, 기종 등을 고려할 때 이번에 발견된 백자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제작된 지방 생산 백자로 추정된다.

발견된 백자들이 제작된 조선 후기에는 전국 각지에 가마가 산재했으며, 수요지와 공급지가 인접해 해상유통을 통한 장거리 운송이 필요하지 않은 품목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에 출수(出水)된 백자들은 이러한 상식을 깨고 해로를 이용한 백자의 유통과정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고 문 과장은 말했다.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소식에 누리꾼들은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진짜 놀랍다."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얼마가 더 바다에 묻힌 거야?" "태안 마도 고선박 발견, 완번 보물선이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이슈팀 @mkculture.com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