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CJ그룹 한류콘텐츠 투자, 하버드MBA 연구대상 됐다
입력 2015-04-23 11:20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슈퍼스타K, ‘응답하라 그리고 ‘미생의 성공을 이뤄낸 CJ E&M은 지난해 126억 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프로그램들의 대중적 인기와 어울리지 않는 이 적자 규모는 사실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약 20년간 3조원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CJ E&M은 적자를 보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1995년 CJ가 영화와 방송에 투자를 시작한 이후 관련 국내산업의 해외수출은 각각 285배, 10배 성장했지만 정작 해당 사업부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적자는 ‘비전이라는 기업의 최대 자산을 감가상각시키는 요인이다. 경영자들은 적자 앞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CJ 경영진의 대응법은 평범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류를 하나의 플랫폼 삼아 한국 중소기업 제품 전시회와 연결시킨 ‘KCON 사업이다. 2012년 KCON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한 현실이 내부 회의에서 공개되자 CJ 경영진은 오히려 KCON에 투자규모를 2배 늘리기로 결정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지난 3월 19일 이 사례를 ‘케이스 스터디, 즉 연구대상으로 올렸다. 최고경영자(EMBA)과정에서 교재로 채택된 이 사례를 공동집필한 엘리 오펙 교수와 서울대 경영대 김상훈 교수는 ‘과연 적자가 나더라도 경영자 자신의 마음 속에 장기적 비전이 뚜렷하다면 투자를 늘리는 것이 나을까?라는 고민을 수업시간의 토론과제로 던졌다.
◆ CJ의 비전 = 전 세계인이 매년 2~3편의 한국영화를 보고, 매월 1~2번 한국 음식을 먹게 할 것”
2013년 봄 어느날. CJ 경영진은 전해 개최했던 KCON의 성과를 논의하고, 그를 바탕으로 계속 이 행사를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회의를 가졌다. KCON은 한류 콘서트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삼아 한국의 콘텐츠-대기업-중소기업 제품 등을 체험하는 종합적인 브랜드 체험장을 제공하는 전시회다. CJ 측은 한류에 열광하는 해외 팬들을 현지에 찾아가서 팬들과 소통하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 발판을 제공함으로써 한류를 산업화함과 동시에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것이 기획의도라고 밝혔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한 경영진 그 누구도 약 12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적자를 기록한 사업을 왜 유지해야 하는지 쉽사리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회장은 2013년에 KCON을 진행할 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그는 과연 한류가 미국 사회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 것인지, ‘강남스타일의 성공이 과연 더 이상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KCON이 한류를 전파시키는 적절한 수단인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만 했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한 이 회장의 결론은 명료했다. 그는 2013년에 전년 대비 투자를 2배 늘리는 결정을 내렸다. 하버드대 사례집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직접 문화산업은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이며 한국은 아시아를 넘어 향후 글로벌 문화강국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것이 적자를 내면서 지금까지 CJ가 문화 콘텐츠 사업에 지속 투자해 온 이유”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 회장은 국내외 언론에도 틈날 때마다 CJ의 비전에 대해 전 세계인이 매년 2~3편의 한국 영화를 보고, 매월 1~2번 한국 음식을 먹고, 매주 1~2편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며, 매일 1~2곡씩 한국 음악을 듣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했었다. CJ 관계자는 2012년 첫 KCON 행사가 적자임에도 그 가능성과 한류의 글로벌화라는 투자의 중요성을 감안해 2013년에는 2배 규모의 투자를 승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 지속적인 지배구조가 적자 견디는 원동력
KCON에 비교할 수 있는 사례로는 1980년대 후반 애플이 진행한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프로젝트인 ‘뉴튼이 있다. 후일 아이패드의 기반이 되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휴대용 기기의 플랫폼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모델이다. 다수의 타 IT 기업들이 뉴튼의 운영체제(OS)를 가져다 쓸 정도로 실체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해당 사업부의 적자였다. 28만대 판매를 예상한 뉴튼은 당초 목표의 절반에도 못미친 10만대가 팔렸고, 당시 애플 CEO였던 존 스컬리는 그때부터 초조해 지기 시작한다. 펩시콜라에서 온 전문경영인으로서 그는 적자를 버틸 수 있을만큼 애플 지배구조에서 강한 존재는 아니었다. 결국 본인의 비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리하게 뉴튼 프로젝트를 몰아부쳤고, ‘마감시한을 맞추기 위해 뉴튼 개발 엔지니어들은 하루 16시간을 일했다.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리가 없었다. 적자로 인해 ‘뉴튼의 비전은 훼손됐던 것이다.
KCON도 막연한 한류 활용 마케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뉴튼과 같은 플랫폼으로서의 실체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소기업청과 동반성장위원회는 KCON에 참여할 기업과 아이템을 심사할 수 있는 전문위원단을 구성해 뷰티, 패션, 스타일 등 한류를 통해 실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업들을 선별했다. 물없이 머리를 감는 샴푸를 개발해 전 세계에 판매처를 확대하고 있는 ‘코소아같은 국내 중소기업이 대표적 사례였다. 지난 2012 년과 2013 년에 2 년 연속 케이콘에 참여했던 이은실 이도발효한차 대표는 한방 발효차에 서양인들이 관심을 가질까 의문이었는데, 막상 케이콘 현장에서 만난 미국인들이 호감을 보이며 바로 구매를 해 놀랐다”며 한국식 발효차가 미국인들이 관심있는 ‘웰빙‘ 코드와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CJ 측은 2014년 KCON을 통해 한류와 함께 진출한 국내 중소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거둔 홍보 및 마케팅 효과가 132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CJ의 KCON 역시 초기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따라서 애플의 존 스컬리와 같은 초조함이 CJ 내부에서 발견된다면 뉴튼처럼 실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쇄는 CJ가 지금의 비전을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투자-매출-수익 예상 어려운 문화 콘텐츠 산업의 특수성
문화 콘텐츠 산업의 특수성도 적자와 비전‘ 사이의 저울질을 가늠할 때 고려해 볼만한 요소다. 문화콘텐츠 사업은 투자 비용‘ 대비 매출이나 수익‘의 예상이 힘들기 때문에 투자 방식이 일반 제조업 기업과 다르다. 성과를 내기까지 소비자, 즉 대중들의 인식 변화를 기다리는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데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과감한 투자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이재현 회장이 부재 중인 CJ의 문화 콘텐츠 사업 성장동력은 위축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글로벌 사업의 타격. CJ E&M의 글로벌 사업 매출은 2013년 894억원에서 지난해 741억원으로 17% 감소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글로벌 매출 비중도 7%에서 5.7%로 낮아졌다.
그러는 사이 중국의 추격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최근 중국은 한국 출신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연봉 3배를 제안하면서 스카우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 스타일리스트에게 도움을 받은 연예인의 외모는 이전에 비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부터다. 한국 예능인 중에는 중국에서 드라마 출연 1회당 최대 1억원을 받는 이가 있다는 현지 보도도 있었다. 사실 CJ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문화 콘텐츠 산업의 적자가 아니라 중국의 추격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물량공세일 수도 있다. 중국은 CJ가 했던 것보다 더 크고 긴 적자의 행진을 견딜 자세가 되어 있다. 이 말이 맞다면 식품·외식·홈쇼핑 등에서 이익을 보고 있는 CJ가 E&M 부문의 적자에 목매여 투자를 미룰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룹 리더십의 공백이라는 유일한 문제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신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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