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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인터뷰] 한지상 “‘장미빛 연인들’, 내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
입력 2015-04-23 09:59 
[MBN스타 금빛나 기자] 종심(從心), 성인으로 불리는 공자도 70세가 되서야 뜻대로 행해도 도에 어긋나지 않고 자유로워졌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제가 하는 영역(연기)에 있어 진정한 자유를 얻기 원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봐요. 제 나이 34살, 아직도 갈 길이 멀었죠.”

배우 한지상이 드라마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을 때, 공연계는 크게 술렁였다. 실력파 뮤지컬 배우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한지상이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은 기존의 명성을 모두 버리고 다시 신인으로 돌아가겠다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무대 연기와 브라운관 연기가 많이 다른 만큼, 혹여 세간에서 받을 평가절하에 대해 걱정하는 시각도 있었다.

이 같은 사람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드라마에 과감하게 도전한 한지상은 장장 50부작에 2부 연장된 MBC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을 탈 없이 마치고, 주말 안방극장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경험한 어려움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한지상은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무척 감사해했다.


제가 공연에서는 어느 정도 올라섰을지 몰라도, 드라마에서는 완전 신인이나 다름없잖아요. 드라마라고는 찍어본 적이 없는 배우가 주말드라마라는 엄청난 세상에 뛰어들었는데, 거기에 비중 또한 적지 않아요. 이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어요. 처음 도전하는 자리에서 연기를 하다 보니 때로는 주눅이 들 때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주눅이 기분 좋아요. 배우는 것도 많고 더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전 더 주눅 들었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도전은 실(失)이 아닌 득(得)이었다고 말한 한지상은 ‘장미빛 연인들을 하면서 가장 감사한 일로 꼽은 것은 배우들의 호흡이었다. 선배 및 또래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하고 작업을 하면서, 무대와 다른 드라마 연기 테크닉을 몸으로 익히고 배우면서, 학문과는 또 다른 실전의 연기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첫 대본 리딩 때였어요. 같이 연기하시는 선생님들은 얼마나 근사한지, 저는 리딩이 아니라 환상의 오케스트라를 듣는 줄 알았어요. 속으로 감탄하는 동시에 이 드라마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렸죠.”

많은 배우들 중에서도 한지상은 기억에 많이 남는 선배로 함께 가장 많은 호흡을 맞추었던 이미숙과 어린 시절 우상과도 같았던 박상원을 꼽았다.

사진=옥영화 기자
아무래도 모자지간이었던 이미숙 선배님과 합을 많이 맞췄었죠. 간혹 ‘이미숙 무서운 여배우 아니냐라고 물으시는데 전혀 아니세요. 처음 이미숙 선배님이 저희에게 ‘나 무서운 사람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함께 작업하면서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선배님은 분명하신 분이기 때문에, 제 할 몫을 못했을 때 따끔하게 야단치시지,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절대 야단하지 않으세요. 그 야단조차도 더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채찍일 뿐, 알고 보면 따뜻하신 분이죠. 박상원 선배와의 호흡도 기억에 남아요. 과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정말 감명 깊게 봤거든요. 어린 시절 드라마에서 봤던 그 분이 몇 십 년이 지나고서는 제 앞에서 술을 마시는 연기를 하고 계신데…어찌나 감격스러운지. 그 기분 모르실 거예요.”

한지상이 연기를 배운 건 비단 선배 배우를 뿐이 아니었다. 젊은 배우들 역시 자신보다 먼저 드라마 연기를 배운 선배들이라고 말한 한지상은 찍을 때 보면 그들이 경험에서 채득한 여유와 실력, 커리어들이 여실히 보인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는 또 다시 새로운 것을 배워나간다”고 설명했다.

극중 연인호흡을 맞췄던 민서씨도 그렇고 장우나 아정이 등 다들 나이는 비슷한데 카메라 앞에서는 노련하고 신중해요. 무대에서 배우들끼리 호흡을 주고받는 것과 카메라 앞에서 배우들이 호흡을 주고받는 것은 무척이나 다르더라고요. 카메라를 통해서 보시는 시청자들을 위한 진실이 되게끔 도와주는 연기적 스킬들이 있어요. 대단한 기술을 요한다기 보다는 매우 찰나의 기술들인데, 함께 작업했던 친구들이 그런 사소한 팁이나 기술들을 많이 알려줬어요.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을 때도 있었고, 어깨너머로 도움을 받은 것도 많았죠.”

‘장미빛 연인들에 출연한 많은 배우들 중에서 한지상이 꼽은 최고의 배우는 아역배우 이고은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고은이 보여준 연기야 말로 아주 본능적인 연기였다고.

뮤지컬 하기 10년 전으로 돌아가 드라마에 도전했으면 차라리 연기하기 더 편했을 것 같아요. 그런 말 있잖아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초롱(이고은 분)이의 연기를 보면서 정말 많이 배운다. 본능과 직관에 의지해서 연기하거든요. 대학교때를 생각해보면 전공 수업만큼은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한 만큼 재밌었어요. 그때 느꼈던 배움의 카타르시스를 실현시켜야 하는데 어느 순간 그 느낌, 이른바 초심의 마음을 잊고 살아간 거죠. 그때와 비교했을 때 기술적인 부분은 발전했지만 마음만큼은 그때의 느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카메라 앞에서 선 제 모습을 보면서 더 배우고 싶었고, 초롱이의 연기를 보면서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아무리 본인 스스로 처음 시작하는 드라마를 통해 배운 것이 많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한지상의 무대를 사랑했던 팬들의 입장에서는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연기를 펼쳤던 배우였는데, 원한다면 얼마든지 주인공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한지상이었는데 그간의 명성을 버리고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영역으로 넘어가 스스로 신인이 된 것이 아닌가. 익숙한 울타리에서 벗어난 한지상, 이에 따른 후회나 아쉬움은 없었을까.

후회요?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후회라는 단어의 정반대의 마음이죠. 배우라는 이름에 구분을 두지 싶지 않아요. 제가 드라마를 찍는다고 해서 뮤지컬을 안 할 것도 아니잖아요. ‘장미빛 연인들 출연은 제게 있어 전부터 뜻했던 연기를 이제야 하게 해준 작품이자, 일종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죠. 작년이었죠, 제 나이 서른세 살에 비로소 원했던 영역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거예요. 종심(從心), 성인으로 불리는 공자도 70세가 되서야 뜻대로 행(行)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고 자유로워졌다고 하잖아요. 그 위대한 공자 역시 69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70세 나이에 이르러서 진정한 자유를 얻은 거예요. 그에 비하면 아직 반도 못 갔어요.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69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공자처럼 혹독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드라마 안에서 자유롭고 싶었지만, 아직 그 자유를 만끽하기에는 트레이닝이 덜 됐어요. ‘장미빛 연인들은 근거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한 하나의 밑바탕인 거죠.”

한지상이 말하는 근거 있는 자유는 비단 드라마 속 연기 뿐 아니라 그에게 익숙한 공연계에서도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2005년에 처음 뮤지컬에 도전해서 이제 10년차 배우가 됐는데, 저 역시 처음부터 뮤지컬 연기가 능숙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예전에 KBS2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출연 당시 지훈형이 ‘지상히 많이 컸네라는 말을 했었어요. 그 말이 얼마나 고맙던지, 제 후천적인 노력을 보고 칭찬해 주신 거거든요. 뮤지컬 시작했을 때 저 정말 못했어요.(웃음) 제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연기를 시작한지 8년 만이었어요. 지금으로부터 1년 반이 채 안 되는 시간이죠. 제 나름대로 8년 동안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칠 수 있는 이유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 아무것도 없더라도 관객들을 끌어당기게 할 수 있는 몰입도와 허무맹랑한 것이라도 믿게 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연기, 그리고 함께 하는 배우들 간의 호흡 등을 배운 것이죠. 재작년 쯤 조금 자유로워 졌고 ‘내 마음대로 해도 지정된 범위를 벗어나지 않겠구나를 느꼈어요”

사진=옥영화 기자
‘한지상은 선천적으로 많이 받고 태어난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의 의외로 많으신데 아니에요. 지난 시간동안 치열하게 트레이닝 하고 또 갈고 닦은 것이죠. 지훈이 형의 ‘많이 컸네 발언은 자유롭고 싶어서 투자했던 저의 8년간의 트레이닝의 영역을 후련하게 말해준 거예요. 지훈이형 같은 경우 평소에도 근성 있고 탤런트도 워낙 많아 좋아하는 형인데, 남들이 모르는 후천적인 면까지 발견하고 인정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한지상은 ‘워커홀릭이라고 불릴 정도로 쉼 없이 일하는 배우다. 그의 성향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공연 스케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에게 휴식이 없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어김없이 돌아오는 말이 있다.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이다. 그가 누리는, 그리고 더 누리고자 하는 ‘근거 있는 자유의 비결은 쉼 없이 갈고 닦는 99%의 노력에 있는 것이었다.

자유투로 유명한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 잘 아시죠. 그런데 사실 초창기 마이클 조던은 자유투가 잘 안 됐던 선수였데요. 그런데 누군가가 ‘자유투가 잘 안 되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정말 하루도 쉬지 않고 자유투 연습만 했데요.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연습한 결과 그는 눈감고도 자유투를 던질 수 있는 99%의 성공확률을 자랑하게 된 것이죠. 마이클 조던을 천재로 만든 건 1%의 재능과 99%의 노력이라고 해요. 마이클 조던은 ‘성공의 요인을 코트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연습장이라고 말했죠. 그게 저를 자극하게 만든 말이었어요. 맞아요. 일정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1%라는 가능성은 있어야 해요.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후천적인 트레이닝이에요. 꿰어야 보배라고 연마하지 않으면 원석은 그대로 원석일 뿐이에요.”

연습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한지상을 보면서 얼핏 10년간 매일같이 그가 해 왔던 피나는 노력들이 보이는 듯했다. 뮤지컬과 드라마, 두 영역 모두 맛을 본 한지상에게 어떤 분야가 매력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그 말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질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어느 것도 더 좋다고 선택할 수 없다는 한지상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뒤늦게 너무 뻔한 질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옥영화 기자
뮤지컬만의 현장성과 라이브감은 대단합니다. 현장에 있는 많은 관객들이 배우들의 연기에 반응을 하면서 소통을 하는데, 이는 즉 관객도 연극의 일부가 돼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반면 드라마라는 것은 카메라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중이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현미경과 같이 세밀한 표정과 동작 등 하나하나 확대해서 보는 것인 거죠.”

장장 한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연기에 대해 열변을 털어놓은 한지상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속해있는 연예인 격투모임 패대기와 반상화 연극단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배우들의 격투 동호회 패대기라고 현재 김도신 선배를 비롯해 김진수, 박건형, 연출가 민준호 형 등등 20여명의 회원분들이 소속돼 있어요.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매주 화, 목요일 모이는데 격투만 하는 것이 아니, 체력증진에도 득이 되는 긍정적인 모임이죠. 모두 배우적인 마인드로 연습하고 있어요. 대결요? 우선은 저희끼리 저희와의 싸움인거죠. 그리고 또 하나. 2006년 김무열과 윤석원형과 함께 연극극단 반상회라고 만들었어요. 매년 적어도 한 편 이상의 연극을 하는 것이 목표인데 올해도 꼭 할 예정입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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