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국이 의료 선진국?…더 중요한 재활은 아직 후진국
입력 2015-04-22 11:45 

직장인 이정근씨는 올해초 부인(55)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행히 뇌출혈 증세를 알아차린 가족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불과 1시간만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응급치료를 받고 중환실로 입원했다. 예상보다 빨리 상태가 호전되어 사흘만에 중환실에서 일반 입원실로 옮겨 일주일간 치료를 받고 재활치료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씨의 불만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재활치료 시간이 하루 2시간도 안될 정도로 짧았고 3주쯤 되니 병원으로부터 가능하면 퇴원해 통원하면서 재활치료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부인을 볼때마다 집중 재활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회사에서 한참 일해야 하는 시기이고, 자녀들은 학교를 다녀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뇌졸중과 같은 뇌손상이나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치료에만 신경을 쓰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재활치료다. 집중 재활치료는 빠른 사회복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재활병원에서 하루 2~3시간이상 재활치료를 받기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사고이후 환자들이 적절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해 사회복귀가 어려워지면서 그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피해가 연간 2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당수 선진국은 사고가 나면 48시간이내에 재활의학과 전문의와 협진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생명살리기에만 관심을 기울리며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며 급성기 환자를 1~2주동안 침상에 뉘어놓는다. 누구나 오랫동안 누워있으면 심폐기능이 저하되고 척추관절(뼈)이 굳어 재활치료를 받을 때 어려움이 뒤따른다. 어깨·팔이 골절된 환자가 장기간 움직이지 않으면 기능이 퇴화된다.
김윤태 국립교통재활병원 부원장(재활의학과 교수)은 사고 후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충분한 집중 재활치료를 통해 손상된 신체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며 그러나 재활치료 받기를 원하는 환자는 많지만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해 재활치료 시간을 늘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고령인구가 급증하고 국민소득 3만달러시대가 다가오면서 재활치료(rehabilitation medicine)시스템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재활시설 및 재활치료 수준은 선진국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다.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재활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재활의학 전문인력과 재활의료기관 부족, 비효율적인 의료전달 체계, 집중 재활치료를 위한 수가체계 미비, 정확한 정보부재로 적절하고 통합된 재활치료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재활치료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장애인 보건법과 의료법 개정 등이 논의되고 있다. 또한 재활특화를 위해 수가현실화 및 보험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WHO(세계보건기구)는‘재활은 최적의 신체적, 감각적, 지능적, 심리적, 사회적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유지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해 재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체장애를 최소화하여 정상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재활치료 대상에는 질병과 사고로 인한 뇌졸중, 척수손상 환자 뿐만 아니라 각종 통증으로 보행과 일상생활 동작에 지장을 받는 모든 환자가 포함된다. 재활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러스크 박사는 재활의학을 치료의학, 예방의학에 이은 제3 의학이라고 제창한 바있다.
김봉옥 충남대병원장(대한재활의학회장)은 재활의학 치료는 예방이 가능한 이차적 장애 발생을 막고 장애 중증도를 줄여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며 재활의료는 국가차원의 공공의료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옥 원장은 미국 러스크재활병원, 독일 회엔리트재활병원, 오스트리아 바이세포흐 교통사고 전문재활병원을 사례로 들며 환자 재활치료와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통합적인 선진서비스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재활의학은 선진국도 비교적 늦게 시작됐지만 사회의 산업화·현대화에 따른 각종 사고로 그 역할과 기능이 부각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중요성이 인정돼 1958년 처음으로 재활의학이 의과대학 정규과목으로 자리잡았고 1983년부터 전문의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1972년 대한재활의학회가 설립되어 물리의학과 뇌질환, 척수질환, 소아질환, 근전도, 심폐질환, 근골격계 질환에서 수많은 학문적 성과를 일궈냈다.
임상연구도 활발해 재활치료에 보행로봇이 도입되어 적극 활용되고 있다. 보행로봇은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 다발성 경화증, 척수손상에 의한 신경계 손상으로 걷기 힘든 환자들이 의료진 도움없이도 잘 걸을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장비이다.
우리나라는 재활의학의 후발주자였지만 현재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수준까지 쫓아가려면 넘어야할 산이 많다. 실제로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없다. 신형익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현행 재활의료의 문제점으로 크게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치료포기, 반복적인 입원·재입원을 꼽는다. 그 원인으로 신형익 교수는 △재활의료기관 제도의 부족 △다학제 팀접근의 어려움 △집중재활치료를 위한 수가체계 미비 △유지기 재활의료 체계 미비 등을 지적한다. 한마디로 집중 재활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제반 여건이 부족한다는 얘기다. 약간 오래된 통계(2008년)이긴 하지만 뇌졸중 환자중 급성뇌졸중 발생후 전문재활치료를 받은 환자는 약 18%에 불과했다. 중증장애로 이어진 뇌졸중 입원환자중 15.3%(2013년 기준)는 30일 이하의 단기 입원을 하는데 그쳤다. 특히 저소득층이거나 입원병원이 거주지가 아닌 지역에 있을수록 입원기간이 1개월이내로 짧아 재활치료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 미국은 미국뇌졸중협회가 뇌졸중환자 400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기사망(15%)와 장기입원(10%)를 제외한 75%의 환자가 전문 재활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의대가 최초 입원이후 3년간 입원 양상을 추적 조사한 결과, 지체장애 및 뇌병변장애 모두 약 한달간격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는 양상을 보였다. 척수손상 장애자는 평균 2.7개병원을 전전했다. 뇌졸중 환자는 57%가 1개 병원에서 4개월이상 재원해 치료를 받은 뒤 집으로 퇴원했지만, 나머지 43%는 2~3개 병원을 옮겨다녀야 했다.
이같은 불편함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지역사회 재활인프라(외래치료, 방문재활치료)구축 △별도의 수가체계 구축 △재활의료기관에 대한 인증·지원·평가체계 구축 등과 같은 재활의료 전달체계가 정립돼야 한다. 우봉식 청주아이엠재활병원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은 장애가 발생한 환자는 대학병원에서 급성기치료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부터 의료기관을 여기저기 전전하며 치료에 적응할만하면 또다시 병원을 옮기는 고달픈 유랑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뜻있는 재활병원과 요양병원이 모여 대한재활병원협회를 만들어 한국 재활의료체계의 새로운 틀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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