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이면] 타이타닉 침몰, 세월호 1주년 앞둔 우리는…
입력 2015-04-15 14:41  | 수정 2015-04-15 14:52
출처 = MBN 캡처
이전의 오늘은 어떤 날이었을까.
'오늘裏面'은 이러한 궁금증으로 시작됐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지는 뉴스와 사건들 속에서 울고 웃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오늘이면은 과거의 오늘이 가진 다른 의미를 추적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소외당하고 잊혀질 뻔한 사실들을 적습니다.
오늘의 역사를 통해서 지금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03년 전 오늘, 4월 15일은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날입니다.

기록문학인 ‘타이타닉호의 최후의 저자 로드는 그 날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1912년 4월14일 일요일, 시계는 바야흐로 오후 11시40분을 가리키려 하였다. 프리트는 갑자기 바로 앞에 무슨 물체가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주위의 어두움보다 훨씬 검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작았으나 그것은 곧 점점 커지며 다가왔다.”

4월 10일 영국의 사우스햄프턴을 출항하며 첫 항해를 시작한 타이타닉은 결국 목적지였던 미국 뉴욕에 도착하지 못하고 15일 새벽 2시 30분(영국시간), 빙산에 충돌하여 2시간 40여분 만에 완전히 침몰했습니다. 영국 상무성은 희생자 수를 1,513명이라고 집계했고, 생존자는 불과 711명이었습니다.

출처 = MBN 캡처


50톤에 육박하는 무게, 이중바닥, 16개의 방수격실, 특정 수위에 자동으로 닫히는 문 등 당대 최고 기술이 사용된 타이타닉호는 절대 가라앉지 않는 배, 일명 ‘불침선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타이타닉의 침몰이 세계에 준 충격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평화시 해난 사고 가운데 가장 큰 인명피해를 기록했고, 타이타닉 사고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첫째, 사고 이후로 런던에서 최초의 국제 해상 안전 협정(Safety Of Life At Sea: SOLAS)이 체결됐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타이타닉은 사랑이야기를 빼면 충분한 고증에 입각해 제작됐기로 유명합니다.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이 지적했듯 배에는 인원수만큼의 충분한 구명정이 없었고 이는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원인이었습니다. 사고 이후 1914년에 체결된 SOLAS협약은 사고 상황에서 조타기가 가동될 수 있도록 전원을 이중화한다거나, 구획 및 복원성과 관련한 제한사항 등 60%이상을 구조에 관한 내용으로 명시했습니다. 현재까지도 300톤 이상의 국제 화물선은 SOLAS협약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둘째, 보험회사 끼리 보험을 드는 ‘재보험이라는 계약형태가 유행하게 됐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사람의 목숨 외에도 금전적으로 큰 피해가 따랐습니다. 타이타닉호에 대한 보험은 대형보험사 7개와 70여개 군소 보험업자가 맡았습니다. 보험사들은 절대 사고가 날 리 없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타이타닉호의 보험을 인수했던 회사들은 파산하거나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세계 제일의 해상보험회사였던 영국의 로이드는 타이타닉호 침몰 때문에 지급한 보험금이 무려 140만 파운드에 이릅니다. 우리 돈으로 1억430억원, 현재 가치로 1조원이 넘었습니다. 이에 교훈을 얻은 보험사들은 재보험을 통해 적극적으로 위험을 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보험사가 다른 보험사에 보험을 들어 대규모 피해를 줄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셋째, 미국에 ‘누진세법이 등장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1등석과 3등석 승객의 생존율 차이에 여론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1등석 여성과 1, 2등석 어린이들 생존율은 97%인데 비해, 3등석 여성과 어린이들의 생존율은 46%와 34%에 불과했습니다. 남성은 1등석 승객이 33%, 3등석 승객은 고작 16%만 살아남았습니다. 이에 분노한 미국 국민들은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913년 2월 누진 소득세를 적용하는 수정헌법 16조가 비준됐습니다. 이 조항은 연방의회가 국세조사나 인구수에 관계없이 소득세를 부과, 징수할 권한을 갖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도한 오보를 막고자 ‘라디오법이 재정됐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사고소식은 무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사고지점에서 80km 떨어진 곳에 있던 배가 조난신호를 듣고 생존자를 구하고 있을 때, 한 아마추어 통신사가 뉴욕으로 타이타닉에 관한 전보를 보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모든 승객 안전; 캐나다로 예인 중
<더 타임스>와 <뉴욕타임스>는 그 메시지를 신문에 그대로 게재했습니다. 완벽한 오보였습니다. 이 일로 진땀을 뺐던 신문사 편집장들은 국가에 주파사용에 관한 전문성을 요구했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미국은 ‘라디오법(The Radio Act)'을 제정했습니다. 아마추어 통신사들이 전파를 사용하려면 정부에 인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상업방송 및 군의 전파를 이용해 송수신하는 것을 막은 것입니다.

출처 = MBN 캡처


내일(16일)은 세월호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지 딱 1년이 되는 날입니다.
해결된 과제보다 남아있는 숙제가 더 많습니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시행령 논란에 아직 활동도 못했고, 안전 법령을 재정비해야 할 국회 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는 이제 막 걸음을 뗐습니다. 사고책임자에 대한 재판도 아직 1심이 진행 중이거나 항소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리학에 ‘타이타닉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계획을 세우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항상 긍정적인 것만 생각해 최악의 시나리오는 고려하지 않고 실패의 이유에 대해서도 따지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될까 두렵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말은 기억하겠다는 말이고 기억하겠다는 말은 변하겠다는 뜻입니다. 빗물에 슨 녹을 강판으로 긁어 파내듯 조금 아프더라도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원칙과 기본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타이타닉, 그 이전과 이후는 달랐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상뉴스국 박준상 인턴기자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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