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배우를 위해 무대를 죽여라” 공연의 역설
입력 2015-03-18 14:36 
현재 공연중인 뮤지컬 ‘드림걸즈’

LED(발광다이오드)가 주인공인가요.”
2009년 뮤지컬 ‘드림걸즈 무대는 쉴 새 없이 번쩍거렸다. 가로 2m, 세로 6m 대형 LED 패널 5개를 설치해 요란하고 화려한 입체 영상 마술을 부렸다. 그러나 정작 배우는 잘 보이지 않았다. 관객의 시선은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360도 회전까지 가능한 LED 패널의 3D영상에 고정됐다.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기 어려워 드라마의 힘은 약해졌다. 공연 무대에 ‘디지털 혁명을 일으켰지만 감동이 줄어드는 역효과를 냈다.
6년만에 돌아온 ‘드림걸즈(5월 25일까지 샤롯데씨어터)는 과감하게 LED 패널을 버렸다. 대신 아날로그 세트로 작품 배경인 1960년대 미국을 살렸다. 전설적인 흑인 R&B 여성 그룹 ‘슈프림스(Supremes)를 소재로 스타가 되고 싶은 소녀들의 꿈과 쇼비즈니스의 명암을 담은 뮤지컬이다. 1982년 토니상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휩쓸고 2007년 가수 비욘세가 주연한 동명 영화로도 제작됐다.
새단장한 ‘드림걸즈 무대는 극장과 분장실, 녹음 스튜디오, 술집 세트로 보다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노병우 무대감독은 첨단 메카니즘을 활용한 LED 무대는 화려하지만 차갑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래서 배우들을 살리고 드라마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아날로그 무대 세트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무게 중심을 배우들의 춤과 연기로 옮긴 후 드라마가 더 강력해졌다. 빼어난 가창력을 지녔지만 안하무인 성격과 뚱뚱한 외모 탓에 동료 디나에게 연인과 인기를 뺏긴 에피의 고통,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디나, 유부남 지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로렐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그들의 웃음과 눈물은 빠르게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아날로그 무대로 갈아입은 ‘드림걸즈는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 세트를 지향하는 국내 공연 트렌드에 역행하지만 관객 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최근들어 ‘공연의 주인공은 배우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무대 세트 ‘거품이 빠지고 있다. 수십억원 대 무대 제작비와 규모를 내세우던 공연 홍보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대신 배우와 드라마, 음악 등 공연의 본질을 강조한다.
세계 공연 추세도 무대 세트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 아이디어로 승부한다.
최근 공연한 영국 극단 컴플리시테 연극 ‘라이온 보이 원판 나무 무대는 텅 비어 있었다. 조명의 변화와 배우들의 대사만으로 서커스장과 제약 회사 실험실, 정글 등으로 ‘인식해야 한다. 관객이 상상력을 동원하고 배우의 연기에 몰입해야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다. 연극은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을 가진 소년 찰리가 실종된 부모님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배우들은 의상도 갈아 입지 않고 고양이와 사자까지 연기한다.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된 영국 연출가 톰 모리스의 화제 연극 ‘워 호스 무대에도 세트가 없다. 대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살아 있다. 배우 3명이 말 인형을 움직이는데 거친 숨소리까지 말과 똑같다. 1차 세계대전 때 군마로 차출된 조이와 소년 알버트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내실에 충실한 무대 메카니즘 덕에 배우의 에너지가 최대한 발산되고 관객은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상징적이며 간략한 무대는 제작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열악한 여건에 놓인 소극장 공연이 살아 남으려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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