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신한·하나금융 "적장 모셔와라"
입력 2015-03-09 17:48  | 수정 2015-03-10 00:10
전직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금융권 임원 출신이 사외이사라는 새 직함을 가지고 홈그라운드에 복귀하고 있다. '관피아(관료+마피아)'와 교수 출신이 떠난 자리를 메우는 모양새다.
경쟁사 임원을 지낸 경력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금융권 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여겨지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에 이어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도 경쟁사 CEO 등 임원 스카우트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이달 말 이진국 전 신한금융투자 부사장, 양원근 전 KB금융지주 부사장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한다.
또 신한금융지주는 박철 전 리딩투자증권 회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할 예정이다. 삼성생명은 오는 13일 기업은행장과 외환은행장을 역임한 윤용로 씨를 새 사외이사로 선임할 계획이다. 박철 전 회장과 윤용로 전 행장은 각각 한국은행 부총재,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그 밖에 우리은행이 유진자산운용 사장 출신인 정한기 호서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데려온다.

앞서 최영휘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유석렬 전 삼성증권 사장 등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하기로 결정한 KB지주는 27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이를 확정하기로 했다.
경쟁사 임원 출신 사외이사가 부쩍 늘어난 직접적 이유는 '구인난'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 사외이사 후보군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관료와 교수 출신을 최대한 배제하다 보니 전직 금융계 임원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은행장과 지주 회장 간 갈등이 경영 위기로까지 이어졌던 'KB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사외이사 제도를 지목하고, 사외이사의 다양성과 전문성 강화 내용을 포함한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마련한 바 있다. 모범규준을 준수하려면 특정 직업군으로의 쏠림이 없어야 하고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데,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 줄 만한 인물이 전 금융권 임원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경쟁사 임원직을 역임한 인물도 과감히 데려온다는 점이다. 25년간 신한을 위해 일했던 최영휘 전 사장과 삼성 금융계열사 대표를 두루 역임한 유석렬 전 사장을 사외이사로 앉힌 KB금융 행보는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하나금융 사외이사 영입 리스트에도 신한과 KB 출신 부사장 두 명이 있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기왕 사외이사로 데려올 거면 경쟁사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던 전문 인력을 데려오는 게 맞다"며 "경쟁사가 가진 장점을 흡수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쓴소리'하는 사외이사가 줄어들어선 안 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권 출신 사외이사는 금융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측면에서 큰 장점이 있다"면서도 "사외이사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전문성 못지않게 독립성 또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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