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자24시]‘버드맨’, 김치 비하? 인종차별의 이중잣대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10년 전쯤 영국의 한 지방 도시에 있었을 때다. 친구와 저녁밥을 먹고 집으로 가는 길, 한 할아버지가 다짜고짜 XXX, 내 나라에서 꺼져!(xxxx! Get out of my country)”라고 했다. 멀쩡해 보이는 노인이었기에 귀를 의심했다. 말로만 듣던 인종 차별이라고 생각했다. 그 노인이 한국전쟁으로 친구(동생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를 잃었다는 얘기는 나중에 들었다. 또 다른 날, 한 흑인 청소년이 공중전화 앞에서 동전 좀 달라”고 했는데 주지 않자 옐로우 멍키(Yellow monkey, 서양인이 동양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 어쩌고 욕을 했다. 흥분해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다. 이 흑인은 나중에 우리를 보더니 슬금슬금 피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왜 그렇게 과격하게 행동해야 했지?라는 후회가 남아 있다.
한국인, 동양인 비하로까지 생각을 부풀렸던 과거 기억의 한 토막을 떠올린 건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버드맨(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때문이다.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라 화제가 된 영화는 한국에서 ‘김치 비하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극 초반 샘 톤슨 역을 맡은 엠마 스톤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꽃집에서 역한 김치 냄새(smells like fxxxxxxx Kimchi)”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말이다. 당연히 기분 나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버드맨을, 영화감독을 비난하는 이들이 꽤 있다. 심지어 엠마 스톤을 욕하는 글도 눈에 띈다. 웃자고 한 얘기라고 믿고 싶지만 엠마 스톤, 입국 금지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극 중 샘은 마약 중독으로 심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의 인물이다.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성격의 캐릭터로, 아버지 리건(마이클 키튼)의 ‘비서가 돼 이것저것 해야 하는 심부름에 짜증났을 뿐이다. 영화 속 대사 하나가 김치를 비하했다”, 한국을 멸시했다”고 확대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앞서 엠마 스톤은 다른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는 한국 음식에 빠져 있다”며 격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면 또 한국인들은 기분 좋아해야 하는 걸까.

사실 김치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향기로울 수만은 없다. 호불호가 강한 향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긍정적, 아니라면 부정적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체취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인정해야 하는 게 정답이지만, 모든 사람이 말을 예쁘게 하거나 각 문화에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생선 초밥, 스시도 미국에 처음 등장했을 때 욕을 먹었다고 한다. 날생선을 먹는 건 야만적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현재 스시는 미국에서 하나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김치도 서서히 변하고 있는 듯하고, 스시처럼 하나의 문화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영화로 김치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고민하게 하는 건 인터넷에서 ‘김치년이라는 말을 쓰며 스스로 한국인을 비하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동남아에서 온 이들을 낮추어보는 우리의 시선은 또 어떤가.
뒤늦게 ‘버드맨을 보고 나오는 길. 김치 비하가 도대체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를 고민하느라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퇴물이 되어버린 한 영화배우가 브로드웨이의 무대에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롱테이크로 찍은 영화에 신선함과 재미를 느낀 건 나중이었기 때문이다. 또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는 역시 쌍엄지를 치켜세워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했는데, 김치 비하가 한쪽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사족을 붙이자면, ‘버드맨은 ‘김치 비하보다 깡통 슈트를 입고 영화 ‘아이언맨에 나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성형수술의 아이콘(?)이 된 맥 라이언, 대형 블록버스터에 열광하는 관객 등이 더 기분 나빠해야 할 것 같은 작품이다. 다행히(?) 당사자들이 기분 나빠한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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