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 관악기 연주자들 돌풍…세계를 홀리다
입력 2015-03-08 16:37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필하모니 드 파리 콘서트홀에서 열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가 끝나자 수석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가장 먼저 불러일으켜 세운 사람은 호른 연주자 김홍박(33)이었다. 곡의 완성도를 높인 일등 공신을 향해 갈채가 쏟아졌다.
이날 객원 호른 수석으로 선율을 보탠 김홍박은 전화 통화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가서 리허설 한 번 없이 무대에 올랐지만 그날 무슨 힘이 생겼는지 굉장히 즐기면서 연주했다. 한국 금관 악기 연주자를 우습게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제2수석을 맡고 있는 그는 런던 심포니 호른 수석 후보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여름 오디션을 통과해 트라이얼(Trial·견습) 기간을 거치고 있다. 런던 심포니는 2~3년 연주력을 시험해본 후 수석 단원을 결정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 호른 부수석과 스웨덴 왕립오페라 호른 제2수석을 거친 그의 숨결을 불어넣은 호른 선율이 유럽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약체로 평가받던 국내 관악기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약진하고 있다. 바순 연주자 유성권(27)은 2010년부터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최연소 수석으로 활약하고 있다. 플루트 연주자 손유빈(30)은 2011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에 발탁됐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에서 활동한 플루티스트 조성현(25)은 최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수석으로 들어갔다.
이들 덕분에 한국은 ‘관악 약세 국가 라는 오명을 벗었다. 국내 클래식 음악 역사가 짧은데다가 관악기를 선택하는 연주자가 많지 않아 연주력이 약했다.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빛을 보는 독주 악기인 피아노와 현악기를 자녀들에게 가르친 것도 한몫 한다 . 조기 교육이 늦고 연주자들이 많지 않아 실력파도 적었다. 악기 소리가 커서 실수(음이탈)도 도드라지기 때문에 관객들의 핀잔도 자주 들어왔다.
‘부는 악기다보니 동양인의 체격 조건 문제라는 오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오케스트라 뒷줄에 앉아 조명을 받지 못했던 관악 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 비결은 조기 교육·유학, 좋은 스승과 체계적인 교육, 관악 연주자 증가에 있다.
김홍박은 14세에 호른을 시작했다. 기존 국내 관악 연주자들이 고교 시절 금관 악기를 잡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랐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석사·최고연주자과정, 베를린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그는 누나 친구가 연주하는 호른 소리에 반했다. 저 따뜻한 소리를 통해 내 감정을 표출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11세부터 바순을 배운 유성권은 조기 유학을 선택했다.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17세에 베를린 국립음대로 유학 갔다.
그는 독일 연주자들은 7~8세에 바순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만큼 기초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찍 음악 본고장에 간 덕분에 기회를 빨리 잡았다. 5년전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은 이례적으로 22세에 불과한 그를 수석 단원으로 뽑았다.
유성권은 경력이 너무 없었는데도 재능과 가능성을 본 것 같다. 무엇보다 음악적 스타일이 잘 맞았다. 내 바순 소리는 묵직하고 따뜻한데 정통 독일 사운드를 추구하는 지휘자 마렉 야노프스키가 좋아했다”며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9세에 플루트를 시작한 손유빈은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를 거쳐 커티스 음악원, 예일대 대학원과 맨해튼 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9세부터 플루트를 배운 조성현은 예원학교에 재학중이던 2005년 미국 오벌린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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