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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영화에 反하다] ‘순수의 시대’를 바로 보면 강하늘은 ‘사형감’
입력 2015-03-07 13:28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면..” 누구나 한 번쯤 영화를 보고 난 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영화에 反하다는 영화를 현실에 대입했을 때 괴리감을 전문가와 함께 논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MBN스타] 격동의 조선 태조 7년, 왕자의 난을 무대로 하고 있는 영화 ‘순수의 시대는 실존 인물인 왕자 이방원(장혁 분)과 여진족 출신이라는 태생적 열등감이 남아있는 조선 최고의 무장 김민재(신하균 분),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태조의 부마인 진(강하늘 분), 세 사람을 혼동으로 인도하는 기녀 가희(강한나 분)의 삶을 다루고 있다.

물론 영화가 이 격동의 시기라는 배경에는 어떤 영화적 의미도 없다. 극이 멜로에 치우친 만큼 오프닝 신에 드러난 역사와 야사의 줄다리기기 절묘하게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쉽다. 이에 MBN스타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심재우 부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시대, 극중 인물들이 겪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을 경우 어떠한 행동이 뒤따를 수 있는지 알아봤다.



Q1. 이성계의 사위 진(강하늘 분)은 아버지 김민재(신하균 분)의 첩이 된 가희(강한나 분)를 범하려 한다. 친부는 아니지만 엄연히 아버지의 아내인데 겁탈했다. 어떻게 처리되나. 강상죄가 적용될 경우 어떤 형벌을 받는가?

A. 조선왕조는 군주, 부모, 노비주인 등에 대한 윤리를 매우 강조한 사회였으며, 직계 존속에 대한 범죄는 더 무겁게 처벌하였습니다. ‘대명률에는 ‘아버지의 첩이나 할아버지의 첩 및 백부․숙부의 처 등을 취하면 각각 참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에 의거하면 아버지의 첩을 겁탈한 진은 사형(참형)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Q2. ‘순수의 시대 속 남자 출연자들은(신하균 제외) 길과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등장한다. 조선 개국 7년이 주 시대인 이 당대 남성들은 장신구로 귀걸이를 많이 착용했는가. 이들에게 귀걸이가 의미하는 바가 궁금하다.

A. 귀걸이는 한국 고대의 무덤에서도 발견되는 것처럼, 그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귀밑에 구멍을 뚫고 귀고리를 찬 풍속이 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심지어 선조 때에는 젊은 사내가 귀를 뚫고 귀걸이를 하는 풍습을 금하기도 하였듯이 당대 남성들 중 일부는 하나의 유행과 멋으로서 귀걸이를 많이 찼던 것으로 보입니다.”


Q3. 많은 작품에서 정도전을 다뤄왔다. 주로 정도전의 영웅적인 부분에 강조했던 다른 작품과 달리 이번 작품에선 권력만을 탐하며, 다소 비열하고 야비한 계획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당시의 정도전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A. 정도전은 조선 왕조를 설계한 사상가로서 조선 개국 후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며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민본을 바탕으로 한 유교중심의 국가 건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개혁가라고 보겠습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양면성을 지닌 만큼 정치가로서 정도전은 정치적 술수, 권력지향적 의식이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학계의 연구성과를 종합해 볼 때 그를 부정적으로만 묘사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Q4. 기녀 가희는 기녀라는 신분에도 자신을 억지로 끌어안은 장군을 밀치고 소리까지 지른다. 심지어 자진하려는 시도까지, 신분차이가 있는데 이런 행위가 가능한가? 기녀의 생활에는 문제가 없는지 궁금하다.

A. 기녀, 즉 기생은 서울과 지방관청의 기생 장부에 올라서 관아에 배속된 천인들인데, 조선시대에 지방관이 마음대로 기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생들이 수청을 들고 지체 높은 자들의 노리개가 되는 경우는 허다했다고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줄거리와 같았다면 기녀 가희는 기생으로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Q5. 진은 노비와 양민들을 함부로 겁탈하고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빠져나간다. 양반이 노비를 강간했을 때 처벌은 어떻게 받나. 또한 노비를 겁탈하는 경우와 양민을 겁탈하는 경우에 형량에 차이가 있나? 신분에 따라 법적인 처벌도 차등됐는가.

A. 조선시대 법전에 보통 사람들이 양민과 노비(여종)를 강간했을 때 모두 동일하게 교수형에 처하도록 하여 강간범을 무겁게 처벌하였습니다. 하지만 양반이 이 같은 죄를 저지를 경우 법대로 처벌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자신의 노비(여종)을 겁탈하거나 첩으로 삼는 것은 처벌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반면, 노비와 양민이 신분이 높은 사족 부녀자를 겁탈한 경우는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Q6. 장군이 기녀를 첩으로 두는 일이 흔했나? 또한 역사적으로 기녀를 첩으로 둔 인물은 누구인가. 또 첩을 두는데 있어 숫자에 제한이 있었는가?

A. 신분 높은 양반들이 기생을 첩으로 삼는 일은 열거할 필요도 없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종 때에 사대부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기생을 첩으로 삼아 여러 가지 사회문제화 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기생을 첩으로 삼는 행위를 금지할 것을 신하들이 요청했으나, 결국 법으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Q7. 부마인 진은 자신의 일탈을 꾸짖는 아버지 김민재에게 뜻에도 없는 부마로 만들어서 벼슬길을 막아놨다”며 원망한다. 당시 시대상으로 부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나? 실제로도 벼슬길에 나갈 수 없었는가.

A. 조선 건국 직후만 하더라도 부마들은 군대를 통솔하는 요직을 맡기도 하였으나, 세종대 이후부터 부마들의 관직 진출을 막아서 이들은 조정의 관료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숙종 때부터는 부인이 죽어도 재혼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부마는 공주를 부인으로 맞이하면서 경제적 풍요는 누릴 수 있었겠지만, 부마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제약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본인이 입신양명할 수는 없는 처지였습니다.”

최준용 기자, 박정선 기자, 여수정 기자, 정예인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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