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작은 무모한 도전…이젠 GE헬스케어 물량 3분의 1 책임져요
입력 2015-02-10 15:20 

앞으로 뭘 해야지? 직원들 월급도 밀려 있는데…. 1998년 3월께다. 박충범 대일정공 대표(57)는 당시 공장에 덩그러니 놓인 설비를 보면서 한숨만 푹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은 이미 휴지조각이 됐다. 학업보다는 사업에 더 큰 매력을 느꼈던 박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어깨 너머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구로 공구상가에서 10년 넘게 유통일을 하면서 악착같이 모은 종자돈으로 1996년 꿈에 그리던 자기 회사를 차렸다. 대우자동차 1차 협력사에 자동차 휠을 가공해 파는 거였다.
내 회사가 생겼다는 행복감에 빠졌던 것도 잠시. 1년 남짓 후 IMF 외환위기라는 시련을 겪으면서 그간 쌓아온 것들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납품사가 부도로 쓰러지면서 여파는 그의 회사에 바로 밀려 왔다. 결국 그도 부도를 맞으면서 직원을 모두 내보내야 했다. 사업은 참 만만치 않았다.
박 대표는 "그간 실패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았는데 내 잘못이 아닌 외부요인으로 인해 회사 문을 닫아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해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다행히 은행 등으로부터 차입을 하지 않고 10여 년간 꾸준히 모은 자본을 토대로 재기에 나설 여지가 있었다.
그는 우연히 글로벌 기업 GE(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일했던 지인의 소개로 GE헬스케어의 한국지사를 방문하게 됐다. 그 곳에서 초음파 진단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살펴보면서 그는 해 볼 만하겠다 싶었다. 정밀도가 더 높았던 자동차부품을 생산했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할 것 같았다. 당시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물량이 적어 돈이 안되는 의료기기 부품까지 생산할 수 없었고 의료기기 부품 공급업체들은 제대로 물건을 만들지 못하는 영세업체들이 대다수였다.

그는 GE헬스케어 담당자에게"제가 초음파 진단기에 들어가는 프레임을 만들어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담당자는 "그렇다면 샘플을 하나 줄 테니 시제품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이후 박 대표가 납품한 시제품을 꼼꼼히 살펴보던 GE헬스케어 담당자는 박 대표의 회사를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했고 거래로 이어졌다. 글로벌 기업인 GE헬스케어와의 최초 계약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일을 계기로 초음파 진단기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프레임은 현재 대일정공의 주력 제품이 됐다.
초도 물량은 100여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제품 정밀도가 뛰어나고 납기를 어기지 않는 믿을만한 회사라는 신뢰가 쌓이면서 현재 대일정공이 GE에 납품하는 물량은 연간 매출액(지난해 308억원)의 3분의 1이 넘는 수준이 됐다. 글로벌 업체에 물량을 공급한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2005년 국내에 상륙한 또 다른 글로벌 회사 '지멘스헬스케어'는 대일정공을 먼저 알고 물량을 공급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서를 먼저 보내오기도 했다.
대일정공은 이제 GE헬스케어와 지멘스헬스케어는 물론 삼성메디슨, 알피니언 메디칼시스템 등 초음파 진단기로 이름난 회사에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로 컸다. 이들 회사를 통해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중국, 미국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가 매출액의 90% 이상이 수출되고 있다.
박 대표는 글로벌 회사를 벤치마킹해 직원들 복지에 특히 신경을 쓴다. 박 대표는 "100년 이상 된 글로벌 기업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과연 이 기업들이 100년 이상 기업을 존속시킬 수 있었던 DNA는 무엇일까를 상당히 연구했는데, 그 핵심은 결국 '직원'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대일정공은 '주5일 근무제'가 국내에서 본격 시행되기 2년 전부터 실시하는가 하면 주문물량이 많지 않았던 지난 겨울에는 11일간 직원들이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창립 이후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주고 사회적 소임을 다하기 위해 장애인 의무 고용 또한 초과 달성하기도 했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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