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후 집으로 향하던 A씨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당황한 A씨는 우선 편도 2차선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차폭등과 미등을 켜 안전조치를 취했다. 그렇게 견인 차량을 기다리던 그때. 멀리서 시속 60km로 달려오던 B씨의 차가 A씨의 차를 그대로 들이받고 말았다. A씨는 B씨가 '분명히 안전 조치를 봤을 텐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해 화를 버럭 냈다. 그런데 B씨는 A씨가 안전조치를 미흡하게 취했기 때문에 A씨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안전 삼각대가 없는 상황에서 차폭등과 미등만으로 비상상황임을 알려 충분히 안전조치를 했다며 과실 없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B씨는 전방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게다가 가로등도 없는 곳에서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A씨의 주장에 맞섰다.
팽팽하게 날이 선 두 사람, 과연 누구의 주장이 맞을까?
결론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미흡한 안전조치는 과실로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단순한 안전조치를 취한 A씨에게 20% 정도의 과실이 있겠다.
차량 고장 등으로 갓길에 차량을 세울 경우 차폭등과 미등 조치만으로 안전조치를 모두 취했다고 볼 수 없다. 더군다나 사고가 발생한 곳은 어두운 밤인데다 가로등도 없는 곳. 따라서 후미 운전자가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A씨에게도 일정 부분 과실이 있다. 통상 안전조치 불이행에 따른 과실은 20% 정도 인정된다.
그러나 만약 낮 시간에 일반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라면 과실 산정은 달라져, A씨의 과실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A씨가 조취한 차폭등과 미등만으로 전방의 상황을 후미 운전자가 충분히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상황에 맞는 안전조치를 해야 2차 사고 등에 따른 책임을 피할 수 있다.
지난 5년간(2010~2014) 한국도로공사 통계에 따르면 고장 정차한 차량 추돌사고가 전체 2차 사고 발생률의 26.1%를 차지하고, 야간 사고 발생률은 무려 74.8%에 달한다. 따라서 차량이 멈췄을 경우 안전조치를 발 빠르게 취하는 게 중요하다. 이때 차량이 멈춘 지점의 환경이나 시각을 살펴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해야 2차 사고 발생을 줄이는 한편 과실 분쟁을 피할 수 있다.
한편 운전 중 차량에 갑자기 문제가 생길 경우, 우선 비상등을 켜고 주변 교통상황을 살피면서 갓길로 차량을 이동하는 것이 좋다. 만일 차가 멈춰 움직이지 않을 경우 비상등을 켜고 보닛이나 트렁크를 열어 놓는다. 이후 차량 뒤쪽에 안전삼각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불꽃 신호를 추가로 설치한다.
또 운전자 및 탑승객은 안전지대나 가드레일 밖으로 대피해야 2차 사고 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안전지대나 가드레일 밖에서 신호 유도봉이나 밝은 색의 옷을 흔들어 뒤에 오는 차량들에게 조심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도 2차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 다만 차도에서 맨손으로 수신호를 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매경닷컴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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