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실험쥐, 그 짧지 않은 鼠生
입력 2015-02-02 14:54 

 안녕? 난 실험쥐야. 이름은 ICR라고 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통합실험동물실에서 살고 있어. 이제 태어난 지 6주 된 수컷이야. 어리다고? 그렇지 않아. 실험쥐 6주는 인간으로 치면 혈기 왕성한 10대에 해당하거든. 성관계도 할 수 있는 나이라구.(하하하)
 난 지난달 29일 '정관수술'을 당했어. 앞으론 자식을 볼 수 없어. 참 슬픈 '서생(鼠生)'이지? 자신의 씨를 많이 퍼트리고 싶은 것은 모든 동물의 본능인데, 좀 너무해. 이것도 다 당신들, 인간을 위한 실험쥐들 희생이라는 것을 좀 알아줘.
 난 곧 무균실 암컷 실험쥐와 합방을 하게 될거야. 정관수술을 했기 때문에 새끼를 만들 순 없지만 암컷은 나와 함께 지내면서 임신했다고 생각하고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해. 내 역할은 거기까지야. 나와 교미한 암컷 쥐는 수정란 이식 수술을 받게 돼. 이식된 수정란은 자궁에 착상돼 '무균쥐(SPF·Specific Patogen Free)'로 태어날 거야. 착상시킨 수정란은 무균쥐 중에서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된 쥐들이 만든 수정란이야. 세균에 감염됐어도 수정란은 깨끗하거든. 하지만 수정란이 깨끗해도 여기서 태어난 새끼쥐는 바로 감염될 수 있어. 그래서 다른 암컷 무균쥐에 수정란을 착상시켜 완벽한 무균쥐를 낳게 하는 거야. 결국 난 무균쥐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거지. 무균쥐가 왜 필요하냐고? 말했잖아. 인간을 위해서라고.
 쥐의 유전자는 인간과 80~90%가 동일해. 수명도 2년 정도로 짧고 새끼도 많이 낳지. 사람에게 있는 장기, 조직 등도 갖고 있어. 신약개발이나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같은 실험쥐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지. 오랑우탄처럼 인간과 거의 비슷한 동물로 실험을 한다면 좋겠지만 희귀동물일 뿐 아니라 비싸서 사용하기 어려워.
 반면 우리들 희생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가봐. KIST에서만 한 해 1t 정도 생쥐가 실험에 사용된 뒤 목숨을 잃어. 쥐 무게가 20g정도니까 대충 계산해도 5만 마리가 희생되는 거야.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실험동물 생산량은 무려 388만 8204마리, 수입 실험동물은 19만 2207마리나 돼. 생산된 실험동물 중 326만 9059마리, 수입량 중 15만 1735마리가 모두 생쥐야. 실험 동물의 약 85%가 모두 생쥐라고 생각하면 될거야.

 실험쥐는 크게 '유전자변형쥐'와 '형질전환쥐'로 나뉘어. 유전자변형쥐는 특정 유전자를 자르거나 없앤 쥐야. 인슐린 분비 유전자를 없애 당뇨에 걸리게 한 쥐가 대표적이지. 형질전환쥐는 인간이 갖고 있는 특정 유전자를 과하게 발현시킨 것을 말해. 노인성 질환인 '치매'의 경우 뇌에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쌓이면 발생하는데 아밀로이드를 쥐에 강제로 주입시키는 거야. 노인이 돼야 나타나는 치매 증상을 생후 몇 개월만에 나타나게 할 수도 있어. 가격은 한 마리 당 몇 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이 나가기도 해. 이런 쥐가 원하는 질병 외에 다른 병에 걸려있다면 실험 결과가 엉망으로 나오겠지? 그래서 무균쥐를 만드는 거야. 정확하고 완벽한 실험을 위해서. (인간들은 정말 너무해!)
 지금까지 우리들은 다양한 곳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됐어. 거의 모든 신약들이 우리들 덕분에 출시됐다고 볼 수 있지. 치매, 관절염, 당뇨, 비만 신약 등은 우리가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거야. 인간이 우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릴 때도 항상 우리를 먼저 보내지. 장기간 우주여행을 거쳤을 때 세포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야.
 우리들 희생이 얼마나 숭고한 지 알겠지? KIST만 해도 지난 10년간 실험쥐를 활용해 200편 넘는 논문을 썼다고. 그래서 실험동물을 기르고 있는 연구소 대부분에는 우리 희생에 경의를 표하고 영혼을 달래기 위한'위혼비'가 있어.
 실험쥐 사육이 이렇게 중요한데, 한국에서는 투자가 많이 부족하다고 해. 우리를 잘 기를 수 있는 교육시스템도 없어. 최근 KIST에서 20억 원을 들여 첨단 무균실을 만들었는데 관리할 사람이 부족하대. 이게 말이 돼? 명심해. 우리를 잘 관리하고 보살펴야만 제대로 된 실험결과가 나오고, 그것이 당신네 인간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이야. 이제 난 무균쥐 암컷과 합방하러 갈게. 조만간 다양한 실험에 활용될 무균쥐들이 태어날 거야. 그 희생으로, 인간 수명은 더 길어질 수 있겠지. 다 우리들 덕분인 줄 알라구. 안녕.
 ※ 도움말 주신 분 : 김동진 KIST 뇌과학연구소장 직무대행, 우지완 KIST 신경과학연구단 전문원, 조약돌 KIST 신경과학연구단 연구원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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