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13월의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
입력 2015-01-27 12:11 
13월의 보너스로 불렸던 연말정산이 13월의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지난해 세법 개정 당시 245 대 6이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키는 여야가 뒤늦게 소급 적용이라는 카드를 내놨지만, 민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무엇이 이토록 월급쟁이들을 분노케 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가 낸 세금만큼 복지혜택을 입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터에 오히려 세금을 더 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세금을 애초에 덜 거뒀기때문에 연말에 더 걷는다고 하지만, 월급쟁이들은 이미 충분히 세금을 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증세가 아니라고 하지만, 국민은 증세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또 수년째 경기불황으로 월급은 동결됐는데, 세금은 계속 늘어나는 것으로 비치니 입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증세가 아니라고 해봐야 국민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 인터뷰 : 이정현 / 새누리당 최고위원(1월21일)
- "이게 증세냐는 논란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 세율 높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증세와는 관련 없다. 조정하다 보니까 세금이 더 걷히게 된 것. 정부가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한 게 아니라 형평성 유지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혜택을 가게 하는 것으로 하기 때문에 큰틀에서의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 인터뷰 : 김무성 / 새누리당 대표(1월21일)
- "세금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국민들 입장에선 이해가 잘 안된다. 정부에서도 9300억 세금 더 들어오는 것이다. 사실상 증세 아니냐 떠나서 이걸 증세로 받아들인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어떨까요?

박근혜 정부 들어 관가에서 '증세'라는 단어는 일종의 금기어라는 말이 돕니다.

증세없는 복지를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만큼 증세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증세 대신 '덜 걷은 세금을 원상회복하는 것'이라는 말을 쓰라는 겁니다.

'지나치게 공제를 많이 해준 것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말을 쓰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는 13월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없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증세가 필요하다면 필요하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감춘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습니다.

어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대통령
- "올해 연말정산 과정에서 국민께 많은 불편을 끼쳐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므로 원인, 배경 등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보완 대책에 대해서도 국민께 더 정확하게 알려드릴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안종범 경제수석에게 "작년 연말정산 시 문제가 지적돼 설명을 충분히 했다면서 올해는 어떻게 미리미리 대비하지 않았는가" 물었습니다.

지금 중산층, 저소득층 근로자도 세 부담이 많이 늘었다는 지적이 있다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유감을 표하고, 국민 고충에 대해 물었지만, 안 수석은 추가대책을 준비 중이라고만 했지, 딱히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야당이 주장하는 법인세 인상 등 증세와 관련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대로 갈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말정산 소급 적용으로 환급이 이뤄지는 5월과 6월 또다시 혼란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소득공제율에 따라 환급액이 달라질 사람들이 누군 많이 환급받았는데, 나는 적게 받았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청와대의 방침이 좋은 대처법은 아닌 듯 보입니다.

사과부터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13월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주체는 또 있습니다.

국세청과 카드사들입니다.

작년에 카드 정보유출로 국민을 분노케 한 카드사들이 이번에는 신용카드액 가운데 대중교통과 전통시장 이용분을 빠뜨렸습니다.

신용카드 이용액은 공제율이 15%지만, 대중교통과 전통시장 이용액은 공제율이 30%로 두 배 많습니다.

신용카드로 고속버스를 타고,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산 사람들은 소득공제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비씨, 삼성, 하나, 신한카드 고객 가운데 290만 명이 1,600억 원에 대한 공제를 받지 못할 뻔 했습니다..

실제 한 사람 당 돌려받을 수 있는 액수가 몇만 원 몇천 원 푼 돈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의 실수로 손해를 입은 것에 대한 뒤끝은 매우 좋지 못합니다.

이 푼돈을 돌려받으려고 연말정산 서류를 다시 작성해야 하는 불편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 인터뷰 : 김 모씨 / 연말정산 피해자
- "누락돼서 정산을 받지 못한 돈도 돈이지만, 한 시간이 걸려서 연말정산을 했는데, 이 연말정산을 다시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화가 나서…"

복잡한 세법 분류를 국세청 간소화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든, 아니면 카드사의 안이한 가맹점 분류가 원인이든 국민은 또 한 번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칭찬할 일은 아니지만, 카드사들의 대처는 그나마 정부보다는 나았습니다.

바로 사과와 함께 피해 보상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 인터뷰 : 이강혁 / 비씨카드 사업지원부문장
- "고객님들께 큰 불편을 끼쳐 너무나 죄송스럽고, 비록 금전적인 피해는 없지만, 고객님들이 정정신청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끼쳤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인터뷰 : 정상호 / 삼성카드 개인영업본부장
- "국세청과 협의해서 다른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을 통해서 하고, 그렇지 않으면 회사 차원에서라도 고객분들에게 피해가지 않도록…."

아무런 사과 없이 국세청 탓을 하거나 세법을 복잡하게 한 정치권을 탓했다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지금은 누구를 탓할 때가 아닙니다.

국민이 연말정산의 취지를 이해 못 한다고 탓할 때가 아닙니다.

연말정산이 복잡하게 만든 정치권과 기획재정부를 탓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그저 오랜 불경기에 지치고 힘든, 그러면서 세금은 꼬박꼬박 내는 유리지갑 봉급자들의 마음을 어르고 달래줄 때입니다.

가장 좋은 대처는 위로와 사과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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