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실적 저하 우려가 있는 종목들을 중심으로 거센 매도공세를 취하고 있다. 상장기업에 대한 실적 및 주가 전망이 매번 엇갈리는 가운데,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동향이 시장 주요 기업들의 실적 흐름 판단을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 기아차에 전날까지 9거래일 연속 기관투자가들의 매도공세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기관이 팔아치운 금액만 1420억원어치에 달한다.
기아차에 대한 기관의 매도공세는 4분기 실적 부진이 원인으로 보인다. 우호적인 원·달러 환율과 신차 효과로 실적 개선 기대감이 높았으나 러시아 환율 불안정에 따른 적자 폭이 예상보다 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날 발표한 현대차의 4분기 영업이익 감소(-7.6%)도 기아차의 실적 부진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실제로 신영증권은 기아차의 4분기 영업이익을 기존 예상치 보다 300억원 이상 줄어든 6435억원으로 추정했다. 루블화 환율이 상승 반전하지 않는 이상 획기적인 적자폭 감소가 여렵다는 설명이다.
최근 기관투자가들이 대거 매도물량을 쏟아낸 종목들은 모두 기아차와 같은 실적 우려를 받고 있다. 현대차, KT, 현대위아, 삼성물산, 금호타이어 등 개별 종목을 비롯해 은행과 건설 등 특정 업종을 대상으로 연일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지난해보다는 올해 실적에 대한 불안감이 기관투자가들의 우려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영업가치가 하락세로 전환하고 자산 가치 상승 이벤트도 종료 단계에 접어들면서 기업가치와 주가가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박용희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의 경우 지난 4분기까지 실적(매출액 7조7000억원, 영업익 1780억원)은 동종업체 대비 선방한 것 추정되나 문제는 올해 실적”이라며 "지난 하반기 저조한 수주 실적이 올해에 반영되면서 건설 부문 매출이 확연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보수적인 관점을 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의 주가는 6만7700원(22일 종가기준)으로 이트레이드 증권이 12월 초 제시한 목표주가(6만8000원)와 큰 차이가 없다.
이밖에도 KT는 자회사에 대한 집중적인 비용 집행과 구조조정에 따른 일회성 비용이, 금호타이어는 노사 임금협상에 따른 단기 비용 급증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주들의 경우 금리 인하 우려와 대한전선 채권 평가손실(은행별 400억원 안팎)이 4분기부터 반영될 전망이며, 건설 업종의 경우 전반적인 업황 침체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은 투자 규모가 큰 만큼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에 비해 기업 실적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여전히 정보의 비대칭성이 남아 있는 만큼 기관의 투자 동향을 참고하는 것도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매경닷컴 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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