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판계에 새해 벽두부터 '마크 저커버그 효과'가 불었다.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해 최고경영자(CEO)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목표로 '책 읽기'를 꼽으면서 일어난 나비 효과다. 그는 "올해 도전 과제로 서로 다른 문화와 믿음, 역사, 기술에 중점을 두고 2주에 한 권씩 새 책을 읽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가 첫 책으로 꼽은 '권력의 종말'. 베네수엘라 통상산업부 장관 출신 저널리스트 모이세스 네임이 전통적인 권력층과 여기에 도전하는 새로운 권력 사이의 대결을 조명한 책이다. 2013년 출간돼 묻혀 있던 이 책은 단숨에 미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한국엔 출간되지 않은 책이라 이 소식이 알려진 직후 국내 출판사들도 곧장 판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에 개설한 북클럽 '책 읽는 한해(A Year of Books)' 페이지에는 18일 두번째 책이 공개됐다. 이번에는 국내에도 출간된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였다. 인류는 어떻게 내면의 선한 천사들로 악한 본성들을 억누르고 점차 덜 폭력적인 세계로 진화해왔는가를 논증하는 이 책은 고고학, 민족지학, 인류학을 아우르며 집필한 1408쪽의 '벽돌책'이다.
최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도 접점이 있어 주목받았다. 저커버그는 "최근 사건들로 폭력과 테러리즘이 전보다 더 흔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 "그런 만큼 모든 폭력, 테러조차 사실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다음날 이 책은 아마존의 '사회 폭력'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2011년 출간된 이 책을 지난해 번역 출간한 사이언스북스도 내심 '저커버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사이언스북스는 "두께와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최근 저커버그 효과 등의 보도에 힙입어 조금씩 판매량이 올라가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 독서 열풍을 일으킨 명사로는 저커버그가 처음은 아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TV쇼에서 언급한 책은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오프라 효과'라는 말을 만들었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은 지난 여름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에게 빌려 20년째 돌려주지 않는 책이라며 '비즈니스 어드벤처스'를 소개해 1971년 절판된 이 책을 다시 '부활'시키기도 했다.
이 책의 국내 판권 경쟁은 치열했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10만 달러 이상을 베팅하는 경쟁 끝에 대형출판사인 S사가 선인세 20만 달러(약 2억원)가 넘는 금액에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 수입사인 대니홍에이전시의 홍대규 대표는 "빌 게이츠 추천도서는 경영서라는 점에서 국내 출판계도 큰 관심을 보였는데, '저커버그 북클럽'은 사회과학·진화심리학 등 진입장벽이 높은 책을 골라 아직까진 국내에서의 효과를 가늠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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