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심정수 “난 행복한 아버지다”…잊었던 홈런왕을 찾다
입력 2015-01-19 06:00  | 수정 2015-01-19 06:15
한국프로야구 전설의 홈런왕 심정수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LG 캠프에 깜짝 등장해 LG 이병규(9번)와 뜨거운 만남을 가졌다. 사진(미국 애리조나)=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美 애리조나) 서민교 기자] 한동안 그의 이름을 잊고 있었다. 지난해 박병호(넥센 히어로즈)가 52홈런을 기록하면서 다시 기억해야 했던 그 이름, 심정수(40)다.
은퇴 후 야구계를 떠났던 심정수가 미국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우연은 운명을 만들었다. 아들의 미국 현지 야구대회 참가를 위해 찾은 애리조나에서 극적으로 옛 동료들과 조우했다.
심정수는 18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 있는 LG 트윈스 스프링캠프에 깜짝 등장했다. 아내와 세 아들과 동행했다. 류현진을 비롯해 이병규(9번), 이동현 등 LG 선수들은 물론 코치진들과 진한 포옹을 나눴다. 국내 야구인들과 한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기 때문에 반가움은 더했다.
심정수가 LG 캠프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첫째 아들이 LA 다저스구장에서 열리는 클럽 토너먼트대회에 참가해 샌디에이고에서 차를 타고 애리조나까지 온 것. 심정수는 LG 캠프가 차려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방문했다. LG 선수단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심정수의 방문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심정수도 정말 오랜 만에 옛 룸메이트였고, 상대 선수였던 사람들을 만나 정말 좋다”며 감격했다. 은퇴 직후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그 감격의 깊이는 더했다.
심정수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설이다. 개인 통산 타율 2할8푼7리 328홈런 1029타점을 기록했고, 2003년 현대 시절 타율 3할3푼5리 53홈런 142타점으로 최고의 활약을 했다. 역대 홈런 3위. 박병호가 52홈런을 기록하기 전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홈런 50개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이승엽(삼성 라이온즈)과 심정수 단 2명뿐이었다.
심정수는 불운의 선수로 기억된다. 1994년 OB 유니폼을 처음 입은 뒤 현대와 삼성을 거쳐 2008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심정수가 남긴 역사는 진했다. 2002년 46홈런, 2003년 53홈런을 기록하며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시대를 잘못 만났다. 이승엽(2002년 47홈런‧2003년 56홈런)의 벽에 막혀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하고 2인자에 머물렀다. 이후 2007년 삼성에서 부활에 성공해 31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생애 첫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때의 기록이 그에 대한 마지막 기억으로 머물러 있다.
심정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국내 야구팬들도 몹시 궁금했던 그의 삶. 예상과는 달랐다. 5년의 미국 생활은 그를 행복한 아버지로 만들어 놓았다. 더 이상 불운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했다.
이병규에게 미국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두 아들을 소개하고 있는 심정수. 사진(미국 애리조나)=옥영화 기자
심정수는 미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인생에 도전했다. 야구를 내려놓고 영어학원을 다니며 토플 시험을 통과해 대학에 입학했다. 미국에 온지 5년 됐다. 처음에는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을 해서 어린 친구들과 심리학 수업도 듣고 음악 수업도 들었다. 1년을 다니면서 학점도 3.0을 유지했다. 그런데 과제가 너무 힘들더라. 애들을 보면서 새벽 3~4시까지 리포트를 쓰다 지쳤다. 1년이었지만,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이후 심정수는 자신의 삶을 또 한 번 포기했다. 이젠 세 아들의 아버지로 제2의 인생을 열었다. 12살인 둘째 아들도 야구를 하고 있고, 미국에 오자마자 늦둥이도 봤다. 세 아들 모두 아버지를 빼닮았다. 첫째 아들은 이미 미국의 몇몇 대학에서 입학 제안을 받은 상태. 둘째 아들도 12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큰 체격으로 심정수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셋째 아들은 그냥 아빠 판박이다.
지금은 애들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다. 아버지다. 애들 경기를 보고 있으면 내가 선수 생활할 때보다 더 떨린다. 애들이 한국프로야구 소식을 매일 말해주고 있긴 한데 난 애들한테 집중하느라 완전히 감을 잃었다. 어쩔 땐 ‘내가 야구를 했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에게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물었다. 또 은퇴를 너무 빨리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도 물었다. 그의 표정에서는 답이 나와 있었다. 대답은 ‘No였다.
라식 수술이 잘못돼 4년을 고생했다. 야간에 보이질 않아 정확도가 떨어졌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눈이 괜찮았다면 3년을 뛰면서 홈런 20개씩은 쳤을 거다. 하지만 난 최선을 다한 야구인생을 살았다. 단 하루도 후회를 하지 않는다. 은퇴도 아쉽지 않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심정수는 후회나 아쉬움 대신 현역 선수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놨다. 한국에서 박병호의 홈런 소식을 들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노력을 얼마나 많이 했겠나? 마흔이 넘게 뛰는 선수들도 정말 대단하다. 얼마나 관리를 잘했으면 그렇게 뛸 수 있겠나?”
심정수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위대한 선수였고, 위대한 아버지니까.
내 꿈은 아버지로서 애들이 운동장에서 멋있게 뛰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나를 기억해주는 팬들이 아직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난 행복했고 지금도 정말 행복하다. 한 명의 인간이고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심정수에게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고 있는 LA 다저스 류현진. 사진(미국 애리조나)=옥영화 기자
[min@maekyung.com]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