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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야구생각] 류중일 4연패 뒤에 숨겨진 ‘김응용 유산’
입력 2014-10-16 08:46  | 수정 2014-10-17 08:58
정규시즌 4연패를 달성한 류중일 삼성 감독이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대구)=김재현 기자
2001년 시즌 중이었다. 대구 출장길에 류중일을 비롯한 몇몇 삼성 코치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당시 삼성 사령탑은 김응용 감독. 식사 자리에서 막내였던 류 코치는 특유의 거침없는 말투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3루 주루코치 정말 못 하겠어요. 감독님 얼굴만 보면 몸이 굳어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빈 말이 아니었다. 류중일 코치는 스트레스 성 탈모에 시달릴 정도로 엄청난 중압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실제 몇 차례 주루미스로 주자를 홈에서 횡사시키기도 했다. 주자가 홈에서 아웃되면 일반적으로 그 책임은 3루 코치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3루 코치는 ‘잘 해야 본전이란 말이 있다.
이런 중요한 자리를 김응용 감독은 삼성 부임 첫 해부터 햇병아리 코치인 류중일에게 맡겼다. 류중일 코치의 불평은 계속됐다. 차라리 2군에 내려가서 코치 수업을 더 받았으면 좋겠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류 코치에게 같이 있던 사람들도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김응용 감독이 삼성으로 오기 전까지 이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같이 야구를 해본 적이 없다. 김응용 감독이 한일은행과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았을 때 류중일 코치는 중학생이었다. 김응용 감독이 해태 타이거즈를 지휘할 때 류중일 코치는 삼성 선수였으니 감히 말을 섞거나 친분을 나눌 사이가 아니었다.
류중일 코치의 머릿속에 있는 김응용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호랑이 같이 무서운 성격 그리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뭐 이런 것이었다. 이런 감독이 덕아웃에 떡하니 앉아 쳐다보고 있는데 초짜 코치가 3루에 나가 있으려니 몸이고 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몇 차례 명백한 실수를 했는데도 김응용 감독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류중일 코치가 머리를 조아리고 김응용 감독 앞으로 가면 고개를 획 돌리고 말았다. 차라리 호통이라도 치면 속이 편할 텐데 모른 척 하니 속이 타 들어갔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건 실수 연발의 류중일에게 3루 주루코치를 계속 맡겼다는 사실이다. 류중일 코치의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김응용 감독의 생각은 이랬다. 삼성에 류중일 만큼 센스 있게 야구를 한 선수가 누가 있냐? 지금은 덤벙대기도 하고, 오버도 하지만 갈수록 안정될 것이다. 스스로 깨우칠 때가 있을 것이다.” 김응용 감독은 비록 류중일 코치와 한솥밥을 먹어 본 적은 없지만 그의 가치는 일찌감치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참고 기다렸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 때 류중일 코치가 포기했더라면.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2군에 내려갔더라면. 김응용 감독이 실수투성이의 류중일 코치를 내쳤더라면.
류중일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큰 획을 그었다. 김응용 김성근도 못한 정규시즌 4연패를 이뤄냈다. 류중일 야구의 핵심은 ‘믿음이다. 시즌 전 구상을 특별한 돌발 변수가 없는 한 바꾸지 않는다. 한 번 믿은 선수는 시즌 끝까지 간다.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과가 정규시즌 4연패로 나타났으니 평가받아 마땅하다.
선수시절 류중일은 재기 넘치고, 화려한 플레이가 돋보였다. 이런 류중일이 감독 부임 이후 진중하고 믿음의 야구로 선수들에게 다가 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1년 그 때 머리카락이 빠져 가며 김응용 감독한테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경닷컴 MK스포츠 편집국장 dhkim@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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