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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공주` 천우희와 비교요? 행복하죠"
입력 2014-09-11 13:42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주인공들이 비명 지른다'고, '무언가 툭 튀어나온다'고 공포는 아니다.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어, 스산한 분위기로 심장을 죄어오는 게 진정한 공포다.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에도 필요한 요소다. 스릴러 장르문학 마니아인 유영선(39) 감독은 영화 '혈의 누'(2005)의 연출부, '므이'(2007)의 조감독 등을 통해 실력을 갈고닦았다. 11일 개봉한 영화 '마녀'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뽐낸다. 이 영화 제작비가 겨우 3000만 원(마케팅비 포함)이 들었다고 하니, 탄성을 자아낸다.
공포와는 거리가 먼 듯해 보이는 이가, 인간의 내재한 공포감을 살살 간지럽히면 폭발력이 더 큰 건 어떻고. '마녀'는 이 필요조건도 충족한다. 배우 박주희(27)가 딱 그렇다. 현실의 박주희는 단아한 인상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음산한 기운을 제대로 뿜어낸다.
박주희는 "난 내 안에 양면적인 모습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꺄르르르 웃었다. 유 감독은 겉보기에는 단아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가진 박주희의 내재된 '마녀'의 모습을 어떻게 알아봤을까.
유 감독은 "이전에 같이 작업하면서 박주희의 이미지가 독특하고 성격도 약간 특이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2012년 '마녀' 단편을 기획했었는데 사실 이 친구를 모델로 글을 쓴 작품이다. 주희를 처음 본 사람들은 '차갑다', '버릇없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허물이 없어질 정도로 친해지면 또 달라진다"고 짚었다.
박주희는 "건네받은 시나리오를 보고 잘해낼 자신이 있었다"며 "'언제 또 이런 캐릭터를 해보겠나!' 생각했다. 내 안에는 분명 세영처럼 차가운 면도 있으니까"라고 강조했다. "말도 툭툭 건네는 편이고, 톰보이 같은 모습도 있다"는 박주희는 '평상시 하던 대로 하면 어렵지 않게 연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방향은 적중했다. 이 영화 특유의 맛을 살리는 데 일조했다.
'마녀'는 자신에게 방해되는 것이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미스터리한 신입사원 세영(박주희)으로 인해 한순간 공포로 변해버린 오피스의 섬뜩한 괴담을 그린 작품. 박주희가 연기를 잘했는지 친구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일부에서는 '한공주'에서 자신의 폭발력을 제대로 보여준 배우 천우희 뒤를 잇는 재목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주위에서 '예고편만 봐서는 말투 자체가 딱 너다!'라고 해요. 제일 편한 상태로 연기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봐요. 가족들과 친구들이 '너와 진짜 똑같다'고 웃어요. 한 지인 연출가는 제 연기를 보더니 '힘 있는 배우인 것 같다'고, '혼자서 극에 긴장감을 이끌고 가는 게 대단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좋았죠. 천우희씨와 비교되는 거요? 좋죠. 좋게 봐주시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요.(웃음)"
박주희는 공포스릴러에 출연했는데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작품에 출연하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은 다르단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걸 좋아하는 그에게, 마녀 혹은 변태(?) 같은 모습이 있다고 했더니 또 꺄르르르 웃는다. "사실 이 영화, 저는 공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감독님이 참고하라고 건네준 영화에 비하면 그리 무섭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유 감독은 박주희에게 참고하라며 몇 편의 공포영화를 제시했다. 일본영화 '오디션'은 무시무시했다. 국내에서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던 작품이다. "'오디션'과 '마녀'의 분위기가 비슷해요. 여자가 한 명, 한 명 복수하는 내용이거든요. 감독님은 이런 분위기가 나와만 준다면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하셨죠. 사실 '오디션' 진짜 무서워요. 감독님이 각오하고 보라고 하셔서 무서운 환경에서 보지 않기 위해 사람 많은 버스에서 휴대폰으로 봤죠. 그런데도 많이 놀랐답니다."
"주희에게 원한 건 '각 잡지 말고 친구에게 대하듯 연기하라' 였어요. 레퍼런스 몇 편을 주고 '네 색깔을 묻혀봐'라고 얘기했는데 잘 소화했죠. 사실 영화 후반부 세영이 이선 팀장(나수윤)에 가하는 고통은 '오디션'을 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거긴 대바늘을 이용하죠. 하하하."(감독)
감독의 말에 박주희는 "겁이 없는 편이라 자해 신 같은 건 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 입에 칼을 넣는 신은 휴지가 입안에 있긴 했지만 베일 수 있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적극적으로 연기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자해하는 장면은 잘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해하면서 흥분을 느끼는 감정이 이게 맞는 건지 몰라 곤란하기도 했었다"고 토로했다. 몇 차례 다시 찍어야 했던 장면이다. 유 감독은 "세영이 자해하고 희열을 느끼는 장면에서 처음 큰소리를 쳤다. 주희가 고민을 하는데 '그게 맞는 것이니 날 믿고 연기하라'고 했다"고 떠올렸다. 이런 의견 교환으로 유 감독과 박주희는 힘을 줄 곳과 뺄 곳을 적절히 배분, 영화를 탄탄하게 만들었다.
대중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유 감독과 박주희. 하지만 주목할 만하다. 영화가 좋아 2000년부터 여기저기 다니며 일을 배운 감독, 고등학교 2학년 때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보고 박신양을 좋아하며 연기하고픈 꿈을 꾼 소녀 박주희. 감독은 밑바닥부터 배운 것들을 이제 자신 있게 선보이고 있고, 재능이 없는 줄 알고 방황했던 박주희는 꽤 많은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을 알리고 있다. 특히 박주희는 학교 교수님인 홍상수 감독의 영화 두 편('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우리 선희')에 출연했다. 연기를 잘하지 않았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홍상수 감독님에게 배우를 캐스팅하거나 사람들을 볼 때 어떤 면을 보느냐고 여쭤본 적이 있어요. 감독님이 '예쁘고 잘생긴 건 얼마 안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은 귀여운 사람이 좋으시대요. 얼굴에서 보이는 게 아니라 성격이나 외형에서 나타나는 귀여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건 영원한 것 같이 생각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추구했던 것이었는데 감독님 말씀을 들으니 '맞다, 그거였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말씀 들으니 좋았어요. 저도 그런 배우가 되도록 노력해야죠. 하하하."
유 감독은 올해 치러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무비꼴라주 창작지원상을 받고 나니 "욕심이 더 생겼다"고 했다. "작년 5월, 12회차 촬영했어요. 하루 3시간씩만 자고 작업했죠. 처음에는 1개관이라도 개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상까지 받으니 욕심이 더 생기네요. 상영관은 별로 없지만 나름대로 선방할 수 있었으면 해요. 꼭 얘기하고 싶은 건 (여주인공을 돌아보며) 박주희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없었을 거라는 겁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살면서 처음 만났을 때 '잘해봅시다!'라고 하지만 끝이 안 좋은 경우가 있잖아요?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고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는데 관객들이 그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jeigun@mk.co.kr사진 카라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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