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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자유의 언덕`, 일상으로 뒤통수 치는 홍상수식 이야기
입력 2014-09-05 15:05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자유의 언덕'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관객을 착각의 늪에 빠지게 한다. '어느 것이 먼저일까?'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혼란스러워진다. 영상이 전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맡기고 따라가면 어느새 물 흐르듯 결말에 다다른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의문투성이고 누군가에게는 득도한 느낌을 전하겠지만.
과거 청혼을 받았던 모리(카세 료)로부터 편지 묶음을 받은 여자 권(서영화). 남자는 서울이란다. 2년 전, 여자는 일본인 강사인 이 남자에게 거절 의사를 표했고, 일본에 돌아갔던 그는 다시 여자를 찾아와 구애하고 있다. 요양차 지리산에 있다가 어학원으로 돌아온 권은 날짜가 적히지 않은 뜻밖의 이 편지들을 읽어 내려가다가 현기증이 나고, 편지들은 바닥에 흩뿌려진다.
여자는 어느 것이 먼저 쓴 것인지 모르게 뒤엉킨 편지들을 주워 다시 읽어 내려간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모리와 카페 여주인 영선(문소리), 모리가 묵는 게스트하우스 주인 구옥(윤여정), 구옥의 조카 상원(김의성) 등 주변 사람들은 따로 또 같이 모리, 권과 어우러지면서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영화는 시간의 연결고리 없이 진행된다.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깊어져 살가운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어색해진다. 뒤죽박죽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화자가 권인데, 권의 시각에서 이 편지들이 뒤엉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은 언제부터인가 모리로 바뀐다. 모리와 권의 일상을 이리저리 담는 카메라. 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모리는 어느새 가까워진 영선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모리는 권을 만나는 걸 포기한 듯, 현실에 순응해 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영선과 나눈 사랑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모리. 위태롭다.
평탄한 인생이 없듯 영화 '자유의 언덕'도 평탄하지 않다. 자유로워 보이는 모리지만, 그는 권에 빠져있다. 잠시 영선에 한눈을 판 것뿐이다. 결혼하지 않은 대부분의 이가 한 이성에게만 직진하지 않듯, 모리는 잠깐 옆길로 샌 거다.
시간이 돌고 돌면 언젠가는 만나는 것처럼, 권과 모리는 만난다. 그러곤 두 사람은 일본으로 떠난다. 해피엔딩? 그런 줄 알았는데 영화는 다시 또 과거로 회기한다. 의문일 수도 있고,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찌질한 인물일 수 있는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흥미롭게 그려지는 특징이 있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것 같은데, 새롭고 신선함이 묻어난다. 관객은 동네에서 만날 것 같은 형, 누나, 아저씨,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마주한다. 현실 감각 가득한 배우들의 연기는 홍상수 영화에 맛을 더한다. 화려함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비추천,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전해지는 인생의 즐거움과 웃음, 감탄을 원한다면 추천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제7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이다. 67분.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중.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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