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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그때 그 가수] ‘그대품에 잠들었으면’ 박정수, 7080과 성인가요 사이
입력 2014-08-28 14:15 
이 가수를 기억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가요계에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반짝 스타로 사라진 가수들. 혹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돌연 대중들의 곁에서 사라진 이들의 발자취를 쫓는다. 사라진 것들의 그리움에 대하여… <편집자 주>


[MBN스타 박정선 기자] 가수 박정수는 지난 1991년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으로 화려하게 데뷔해 신승훈, 이범학 등과 함께 가요계를 주도했다. 당시 86만 장이라는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듬해인 1992년 2집 ‘아름다운 눈물들을 발매하고 활동하던 그는 돌연 군입대를 결정하고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그러다 지난 2012년, 무려 21년 만에 세미트로트 ‘미우나 고우나로 대중들을 찾아 모두의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 우연한 기회에 가요계 입성, 데뷔곡부터 대히트 기록”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단순히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소년 박정수는 고등학교 우연한 기회로 오디션에 응모하고 순탄하게 가요계에 입성했다. 가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소년에게 기회를 준 건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이 한 스포츠 신문 뒷면에 난 기사를 보고 알려주더라고요. 한번 응모해보라고. 그냥 재미로 보자는 마음에서 이선희, 조하문 등의 노래 두 세곡을 녹음해 보냈어요. 호기심에 낸 건데 덜컥 가수가 됐죠.”

1991년 1집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박정수는 당시 내로라하는 가수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앨범 판매고를 자랑했다. 당시 가요계의 인기 척도라고 할 수 있는 KBS ‘가요톱10에서 2위까지 올랐으며 앨범은 당시 86만 장을 팔아치웠다.

사람들이 ‘박정수라고 하면 누군지 모르다가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을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당시 소리창조라는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음악프로그램 외엔 못나가도록 했거든요. 나가라고 해도 못나갔겠지만요.(웃음) 잠깐 음악 무대에서만 얼굴을 비추는 게 전부니까 사람들이 모를 법도 하죠. 그래도 팬클럽이 있었는데 한 팬은 저를 따라서 같은 대학교에 왔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놀랐고 뿌듯했죠.”

그는 의외로 미대 출신이다. 데뷔와 동시에 정상을 맛본 만큼 우쭐하며 소위 ‘스타병에 걸릴 만도 했지만 학생 신분이었던 그는 장학금을 받고 수업을 듣는 바른생활 청년이었다. 이 시대에 흔히 겪었을 계약의 문제도, 수입 정산도 그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노래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잖아요. 그 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신승훈, 신해철 등의 소속사에서 정산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알게 됐어요. 밥도 사주고, 옷도, 차도 있고요. 다 해주니까 딱히 돈이 필요하지 않았던 거죠.”


◇ 군입대와 함께 시작된 악재…운 안 따라줬다”

한 참 바쁘게 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그는 돌연 ‘우정의 무대에 출연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조용히 입대해 군생활을 할 예정이었으나, 어쩌다가 그의 부대에 찾아온 ‘우정의 무대 제작진의 권유로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전공이 적성에 안 맞아서 자퇴를 하니까 영장이 나오더라고요.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군대에 갔는데, 소속사에서 군대는 다녀오지 않은 것처럼 조용히 가자고 제안했죠. 제작진이 제가 그 부대에 있다는 걸 알고 무대에 올린 거죠.”

그는 군입대를 기점으로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전역한 이후 가요계의 판도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앨범을 냈지만 IMF가 터져 세상에 빛도 보지 못했을 정도다.

결국 그는 전과를 하고 복학해 학업에 충실했고,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해 생계를 유지했다. 또 지인의 권유로 부산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일을 하는 등 그가 좋아하는 ‘음악보다 생계형 음악에 집중했다.

전환이 필요했던 시기죠. 선배가 내려와서 이틀만 무대에 서달라고 했는데 결국 몇 년을 지내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라이브 카페에 서는 횟수도 많아지고 라디오 DJ로 활동하기도 했죠. 그 시기는 음악적으로 좋진 않았어요. 대신 경제적으로는 가장 풍족했던 편이었고요.”


◇ 21년 만에 컴백, 7080과 성인가요의 경계”

부산에서 라이브 카페, 라디오 DJ, 대학교 교수 등 다양하게 활동하던 그는 지난 2012년, 무려 21년 만에 새 앨범을 발매했다. 놀랍게도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세미트로트 ‘미우나 고우나다.

아예 장르를 갈아탄 것은 아니에요. 수록곡인 ‘속눈썹은 발라드 곡인데 사실 이 곡을 먼저 녹음했어요. 그런데 음악적인 성향이 많이 바뀐 지금 이 곡을 내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행사를 많이 할 수 있는 세미트로트 곡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미우나 고우나를 받게 된 거죠. 이 곡이 원래는 트로트가수 박현빈 씨에게 갈 곡이었더라고요.”

설 무대가 확연히 줄어든 지금의 음악 시장 탓에 어쩔 수 없이 택한 트로트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의 선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세미트로트로 성인가요와 7080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레퍼토리가 하나 늘어난 셈이죠. 사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선배들이 ‘왜 이런 도전을 했냐고 엄청 뭐라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겉돌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이제는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고 이 박정수가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의 그 박정수라는 것도 알아주시더라고요.”

당분간 박정수는 이 앨범의 곡들로 행사 등 다양한 무대에서 노래를 하겠다고 했다. 또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면서 행사 무대에서 온전히 내 노래로 시간을 채우고 싶다. 보통 세 곡을 부르는데 사람들이 알만한, 히트한 곡을 불러야 하는데 그 세 곡이 다 나의 노래가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이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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