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손실 불가피한 기업 구조조정 발빼자"
입력 2014-07-30 17:11  | 수정 2014-08-01 14:45
'소신인가 보신인가.' 금융회사들의 '보신주의'가 금융권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기업 구조조정에 은행들이 어디까지 지원해야 하는지가 또 다른 이슈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또다시 삐그덕대고 있는 동부제철 구조조정이다.
자율협약 중인 동부제철을 놓고 일부 은행이 보신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채권단 내에서 갈등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손해를 봐서 안 된다'는 일부 채권단과 '비 올 때 우산을 뺏으면 안 된다'는 나머지 채권단 간 다툼이다. "길게 보면 살릴 수 있는 기업인데 단기 수익에 급급해 발뺌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동부제철에 대한 1600억원 규모 자금 지원에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조건부 동의서를 제출했다. 이들 은행은 '추가 자금 지원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추가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자율협약 때 자금 지원은 채권단 75%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다. 결국 채권단은 신한ㆍ하나은행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75% 이상 동의를 얻어 일단 자금 지원은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채권단 간 반목은 깊어졌다. 채권단에서 일부 은행의 보신주의 행태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최근 채권단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언쟁까지 벌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규 자금 지원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 사항을 조건으로 걸었던 것일 뿐"이라고 했다.
채권단 간 갈등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 동부그룹 위기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일부 은행에서 대출을 회수해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른 은행들은 자율협약 개시 후 자금 지원 분담금 기준을 잔액 기준이 아니라 대출 한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은행들이 자금을 급속도로 빼가는 바람에 동부제철의 영업에 큰 지장이 있었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결국 신한ㆍ하나은행이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 자율협약에 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추가적인 자금 지원을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건 결국 실사 조사가 끝나고 경영 정상화 방안이 나왔을 때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며 "예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조건을 걸고 결국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을 빼는 사례가 허다했다"고 비판했다. 두 은행의 반대매수청구권 행사 때 구조조정 과정이 지연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들 보신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워크아웃 중이던 대한조선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신한은행은 1300억원 규모 신규자금 지원 계획에 반대하면서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신한은행이 빠지고 자금 지원 규모는 11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 대한조선은 재무 상황이 악화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지난해 팬택의 자금 지원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주주협의회에서 2145억원의 자금 지원 계획을 세웠지만 일부 은행이 자금 지원에서 빠지면서 지원금액은 1600억원대로 줄어들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부 은행들이 항상 구조조정 과정에서 먼저 빠져나가려는 행태를 보여 원성을 사고 있다"며 "은행 수익은 개선될 수 있겠지만 기업 구조조정은 지연되고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규식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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