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질타당한 `금융 보신주의`…현장 목소리 들어보니
입력 2014-07-29 17:04 
경기 안산 A중소기업 대표는 최근 평소에 거래하던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하고 크게 당황했다. LED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대기업에 이 기술을 제공하는 계약도 진행 중이어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술력을 평가해 1억원을 추가 대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은행 측 반응은 냉담했다.
은행 등 금융권 '보신주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담보대출이나 수수료 수입처럼 리스크 없는 영업을 과도하게 추구하면서 '적재적소에 자금을 공급한다'는 본질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도리어 경제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일선 현장에서 금융사 임직원들 사고만 안 나면 된다는 의식 때문에 리스크가 있는 대출이나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고 보신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은행 보신주의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분야가 대출이다. 특히 은행권 내부에서도 기업 장래성이나 기술력을 충분히 평가하지 않은 채 재무제표만으로 여신심사를 하거나 담보를 제공해야만 대출해주는 관행을 대표적 보신주의로 꼽는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박사는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기술 등을 평가해 대출하는 것이 중요한데 금융권이 책임을 안 지려고 안전 자산에 대한 담보대출에만 주력해온 데 대해 비판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인 B사는 최근 주거래은행에 대기업에서 받은 어음 할인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어음을 발행한 대기업 재무 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에서다. B사 사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해당 은행에 30억원 이상인 공장을 담보로 22억원을 대출받고 7년 이상 연체 없이 거래해 신용도가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B사 사장은 "어음에 문제가 생기면 그 대금을 우리 회사에서 받으면 되는데도 은행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술 등을 담보로 하는 대출에 대한 수요는 매우 높다. 기업은행이 지난 4월 내놓은 지식재산권(IP) 담보 대출을 올 한 해 500억원 책정했는데 8월 중으로 이 금액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술금융 공급은 걸음마 상태다. 그나마 기업ㆍ산업은행 등 정부 소유 은행들이 주로 공급하고 있고 다른 시중은행들은 눈치를 보거나 이제 막 기획에 들어간 단계다.
재무제표 위주 여신 심사와 담보 위주 대출은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궁지로 내몰고 담보력 있는 대기업이나 부동산 사업 등에 대출이 몰리는 쏠림현상을 가중시켜왔다. 특히 경기가 좋을 때 시장 거품을 양산하고 경기가 안 좋을 때 회복을 더디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조선회사에 과도하게 대출됐던 돈이 2008년 이후 줄줄이 부실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나, 2000년대 중ㆍ후반 있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거품이 대표적 사례다.
금융회사도 할 말은 많다. 은행권에서 보신주의가 양산되는 이면에는 '부실'을 주홍글씨처럼 여기는 인사평가 시스템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작년부터 '건전성 관리'를 최고 경영목표로 선정하고 주요한 부실 대출이 발생하면 담당자나 책임자를 아예 영업 일선에서 빼내는 등 강력한 징계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한 시중은행 대출 담당 행원은 "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담당자들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며 "이 때문에 보신주의 영업을 하게 되고 '비올 때 우산 뺏는' 냉정한 태도도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정작 금융당국도 손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금융당국의 과도한 규제, 지나친 징계ㆍ감독도 보신주의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은행에서 꼽는 사례가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다. 은행권 IB업무 담당 고위 임원은 "해당 중소기업 자본금 20% 이상을 투자하면 이 기업을 자회사로 편입시켜야 하는 규제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연결 재무제표를 만들고 경영관리까지 해야 하는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에 투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은행 건전성을 위해 필요한 규제라는 반응이다.
[김규식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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