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외환당국 힘겨운 1020원 방어 전쟁
입력 2014-05-30 15:41  | 수정 2014-05-30 16:26
달러당 원화 환율이 한때 1020원 밑으로 내려간 30일 한 금융정보회사의 시세판에 장중 최저가인 달러당 1017.1원이 표시돼 있다. [김호영 기자]
30일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이 한때 달러당 1010원대에 진입하면서 당국의 환율 방어선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1020원을 정부의 마지노선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날 원화값이 달러당 1017원으로 시작했고, 장중에도 또 한 차례 1020원 선이 무너지면서 정부의 환율방어선이 후퇴한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지만, 그때마다 당국의 개입성 물량이 들어오면서 1020원 선을 회복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외환 시장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정부의 이날 시장 개입으로 1020원대 사수에 대한 정부 의지가 확인된 이상 향후 빠른 속도의 원화값 상승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외환당국의 입장은 지금 수준에서 원화가치가 크게 오르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1020원이면 원화가치가 충분히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개입에 대한 경계감 때문에 투기 세력이 함부로 들어오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외환당국은 일단 1020원 방어에 대해 다소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시장 안팎의 상황은 만만찮다. 우선 올해 주춤할 것으로 보였던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대외교역요건 개선과 내수 부진으로 사상 최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781억달러로 반년 만에 270억달러나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행도 7월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늘려잡을 것이 확실시된다. 수출업체들이 벌어들인 달러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상황에서 1020원 선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이 합리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평가다. KDI의 환율전망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KDI는 올해 실질실효환율이 지난해보다 6% 정도 하락(원화가치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신흥국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빗나갔다. 오히려 국제자금이 인도와 한국 등 신흥국으로 다시 몰려들고 있는 모양새다. 국제외환시장의 수급 측면에서도 원화값은 완연한 절상 분위기다.
여기에 미국이 한국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에 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점도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의회에 보고한 환율보고서에서 '원화값이 금융위기 전인 2007년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2007년 원화값이 900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 원화값은 상당 부분 저평가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원화값이 가장 높았던 2007년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당시와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할 때 외환당국은 달러당 원화값 1020원 선을 1차 방어선으로 정하고 투기세력과 전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뭉칫돈을 투입하면서 환율방어 의지를 천명한 마당에 1차 지지선을 쉽게 내줄 수는 없는 입장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경상수지 흑자 등 여러 대내외 환경을 감안했을 때 원화가치 상승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판단한다"며 "다소 출렁임이 있더라도 이전과 같은 속도의 원고 쏠림이 재현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외환당국이 1차 지지선인 1020원 선을 내주더라도 최종 방어선인 세 자릿수 환율(1000원)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단기적으로는 1020원 선이라는 1차적 방어선을 두고 정부와 시장 간 줄다리기가 벌어지면서 향후 원화값은 1000~1020원대 사이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노영우 기자 / 최승진 기자 /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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