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직장人직장忍]우리 상사는 메멘토? `널뛰기 법`도 정도껏 해야…
입력 2014-05-07 13:57  | 수정 2014-05-31 22:02

로마에서는 로마법, 회사에서는 회사만의 법을 지켜야 하고 상사의 지시 역시 곧 따라야 할 룰이다. 다만 상사의 말을 성문법(成文法)으로 기록할 수는 없을지라도, '법적 안정성'은 지켜지기를 바라는 것이 부하직원들의 바람이다. 오늘도 후배들은 기분파 선배들의 '널뛰기 법'으로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
◆ 직원들이 회의 때 입을 닫는 이유
어느 회사나 소통을 강조하지만 회의 때 활발한 토론이 오가는 회사는 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드물다. 사장은 회의 때마다 온화한 미소를 띄고 어떤 얘기든 해보라고 달래(?)보지만 부하직원들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다.
회의는 무법(無法)지대처럼 보이지만 실은 함정수사(陷穽搜査)의 장이다. 상사들은 흔히 "내 의견에 대한 질문은 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으니 부담없이 말해봐라"고 하다가도 그말 믿고 부담없이 말이라도 꺼냈다하면 "A사원 의견은 좋은 얘기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없다"거나 심할 경우 "쓸데없는 문제제기는 선동일 뿐"이라고 면박을 주기 일쑤다. 물론 구체적인 질문을 자제하고 알아서 일을 진행할 경우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상사의 불호령은 막을 수 없다.
회의에서 선배의 의견에 다른 의견이라도 냈다가는 악영향이 이어질 수도 있다. 회의는 치외법권(治外法權) 적용을 받아 뿌듯하게 토론을 마치고 나올 지라도 "B사원이 오늘 들이 받았다"느니 "C대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건방지다"느니 뒷말을 듣기 일쑤다.

◆ 김부장법, 이차장법…한 나라에 두가지법
한 상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도 시시각각 변하는 마당에 한 회사에 두가지 '법'이 공존하는 경우도 있어 직장인들은 더욱 혼란에 빠진다. 어느 보안관에게 걸려 위법행위로 추궁을 받을지는 복불복이다.
가장 흔한 경우가 개인만의 스타일을 법으로 강조하는 상사들이다. A상사로부터 받은 지시대로 꼼꼼히 꾸려간 문서가 B상사에게는 '독'이 된다.
이 때 부하직원들은 막상 "A상사가 시킨대로(제정한 법대로) 한 건데요"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랬다가는 "A상사가 높다고 A상사 말만 듣냐. 나는 네 선배 안해"라거나 반대로 "법에도 상위법이 우선이듯 회사에서는 더 높은 사람 말이 헌법"이라는 선배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해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C사원은 "물론 잘못해서 호통을 듣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몰라 난감한 경우도 적지 않다"며 "변호사 선임제도와 무죄추정 원칙의 필요성을 오히려 사내에서 절실히 느낀다"고 말했다.
◆ 5월 황금연휴도 선배의 말 한마디면…
업무에 국한된 일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선배의 말 한마디에 진행했던 휴가계획도, 다시 선배의 말 한마디면 무용지물이 돼 후배들은 오늘도 가슴을 부여잡는다.
A대리는 5월 황금연휴를 맞아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1일 근로자의 날부터 6일 석가탄신일로 붉게 물든 달력을 볼 때마다 잘익은 열매를 보는 양 뿌듯했다.
다만 2일이 까만 열매로 표시돼 있어 고민하던 찰나, 부장은 어쩐 일인지 지난달부터 "연차 휴가는 법으로 정해진 거야. 눈치 볼 게 따로 있지"라며 복음과도 같은 말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법' 좋아하는 B부장의 연차휴가 강조는 필시 5월 황금연휴를 염두에 둔 말일 것이라고 A대리는 굳게 믿었다.
그러나 아뿔싸. 만반의 비행기 예약과 다른 선배들의 여론동향 조사를 마치고 돌다리를 두드리듯 부장에게 휴가결재를 받으러 간 A대리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사가 어려운데 휴가는 무슨 휴가냐,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냐"는 말에 A대리는 부장이 메멘토가 된 건 아닐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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