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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백승 골프룰 - 잘 치는 골프, 즐기는 골프
입력 2014-04-24 14:08 
즐기는 골프에 중점을 둘 것인지, 잘 치는 골프에 중점을 둘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사진=MK스포츠 DB
골프장 코스맵(야디지북) 제작을 위해 종종 코스로 직접 들어가 그린의 높낮이를 스케치하고는 한다. 그린만 조사하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빨라 작업도중 자연스럽게 20여개 팀의 다양한 라운드를 볼 수 있다.
소풍 온 듯 멀리서부터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면 이들은 가까운 지인들끼리 골프를 즐기려 온 팀이다. 웃고 떠들며 인간미가 물씬 풍겨난다.
다른 팀의 경우 분위기가 매우 조용하고 무겁다. 제법 심각하게 내기 골프를 하는 듯 열심히 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한데 이런 팀을 지나칠 때는 매우 조심스럽다. 퍼팅 중일 때도 그린에서 스케치를 해야 하므로 매너에 꽤나 신경을 써야 한다.
코스를 지나며 마주치는 모습들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백발이 성성한 연세에도 불구하고 서로 가벼운 반말과 실랑이를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중,고등학교 동창들끼리 나온 팀이며, 여성분들끼리의 라운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보다는 각기 따로 노는 인상이 강하다.
누군가가 조금만 잘 쳐도 샘이 많은지 잘 인정하려 들지 않고 동반자들에 대한 배려심도 조금은 부족해 보인다. 동반자의 공이 러프에 들어가면 일반적으로 한 두 사람 정도가 같이 나서서 찾아주는데 여성만으로 이뤄진 팀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각기 마음이 바쁜가보다.
즐기려는 골프 팀에 들어가서 혼자만 잘 쳐 보려고 심각하게 플레이를 하다가는 즐거운 분위기를 멋쩍게 만든다며 핀잔을 듣는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화난 일이 있느냐?', '요즘 사업이 잘 안되느냐', '친구 돈 따서 가사에 보탤 일 있느냐' 등등의 원성도 이어진다.
반면 잘 치려는 골프 팀에 들어가 분위기 파악을 못한 채 혼자 떠들고 다닌다면 그 또한 원성의 대상이다. 본인이 친 샷에 대해 구구절절 중계방송 및 해설을 하거나 '러프에서 트러블샷을 하다 미스를 하고는 레이 업을 한 것'이라는 등 산만한 플레이를 하다가는 동반자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과적으로도 무거운 분위기에 위축돼 금전적 지출 증가 및 재미없는 골프를 경험하게 된다.

로우 핸디캡 골퍼 사이에 하이핸디캡 골퍼가 끼면 한마디로 꿔 놓은 보리자루가 된다. 그들끼리만 조용조용 꼭 필요한 말만 나누고 아니면 말들을 아낀다. 대화도 선문답 식이다. 미스샷이 많아 철퍼덕 거리며 민폐를 끼치더라도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주변을 무시하고 각자의 플레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하이핸디 입장에서 보면 왜 그리 빡빡하게 공을 치는가 의아해 하지만 잘 치려는 로우핸디 입장에서는 자칫 긴장을 늦추다가 OB라도 한번 나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의 여유가 없다. 공 좀 제대로 배워보려고 잘 치는 골프 팀에 합류했다가는 스트레스만 받고 돌아오게 된다.
반면, 즐기는 골프는 스코어와 상관없이 그날의 오잘공 드라이버샷과 우연히 핀에 붙었던 아이언샷, 그리고 먼 거리 퍼팅이 들어간 것 한두 가지에 환호와 즐거움을 나눈다. 라운드를 마친 뒤 식사 중에서 조차 각각의 무용담 되새기기에 바쁘다.
잘 치려는 골프는 과정이야 어찌됐던지 결과를 스코어로 대변하므로 굿샷에 관한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다. 라운드를 마치고 주변 식당에서도 그날의 라운드에 대하여 별말이 없이 다른 화제가 주종을 이룬다.
즐기려는 팀에 가면 스코어를 포기해야 하고, 잘 치려는 팀에서는 즐겁게 골프를 하려는 마음을 포기해야 한다. 골프를 하면서 잘 치는 골프가 좋은지 즐기는 골프가 좋은지는 각자 선택의 몫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다 하고 싶으면 상당한 대가를 각오하던지 아니면 둘 다 잃을 것인지 둘중에 하나다. 물론 정답은 없다.
다만 잘 치려는 골퍼가 즐기려는 하수 골퍼들만 데리고 다니면서 짭짤하게 수입을 올리는 재미를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어느 날부터 똑같이 즐기는 골퍼로 변해 있을 것이다.

[글·최영수 야디지코리아 회장 / 정리·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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