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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감독,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았던 수장
입력 2014-04-24 08:05 
"형님 리더십"으로 LG를 이끌었던 "수장" 김기태 감독이 23일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갑작스런 소식에 야구계가 충격을 받았다. 사진=MK스포츠 DB
[매경닷컴 MK스포츠 표권향 기자] 서울 잠실구장 1루 더그아웃에는 두 개의 감독 의자가 있다. 푹신하고 등받이에 무궁화가 새겨진 의자와 등받이가 없는 둥글고 허름한 의자가 있다. 그중 초라해 보이는 의자에 ‘감독님 의자라고 쓰여 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김기태(45) 감독의 전용 의자다.
김기태 감독은 2012시즌부터 LG 사령탑을 맡았다. 당시 팀내 최고참 선수였던 최동수(43, 현 LG 잔류군 타격코치) 류택현(43, LG) 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은 감독이었다.
젊은 감독의 부임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선수들이 ‘감독이 아닌 ‘형님으로 모셔 팀 기강이 흔들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선수들은 김기태 감독을 존경했다.
김기태 감독은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선수단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기준에서 판단했다.
훈련을 강요하지 않았다. 김기태 감독은 선수단에게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훈련하도록 지시했다. 단,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게 했다. 팀 내 규율을 정해 그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훈련하기로 약속했다. 고참급 선수들이 솔선수범하니 자연스레 후배들이 따라왔다. 선수들은 말하지 않아도 야구장에 나가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LG만의 독특한 승리 세리모니가 있다. 바로 손가락 세리모니다. 숫자 ‘1을 나타내며 그 안에는 선수단의 ‘일치의 뜻이 담겨있다. 김기태 감독이 추구하는 이상이다.

선수단 분위기는 항상 밝았다. 김기태 감독은 혼자 있는 선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혹여나 개인 성적은 좋은데 언론에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선수가 지나가면 반드시 기자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안부를 물었다. 시선을 감독이 아닌 선수들에게 돌리게 했다.
부진을 겪고 있는 선수들은 개인적으로 불러 어깨를 다독였다. 절대 나무라는 적이 없었다. 힘을 북돋아주는 말로 격려했다.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온 선수들은 수훈선수 인터뷰 때 빠짐없이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로 간의 신뢰가 이뤄낸 쾌거였다.
‘작뱅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병규(31, 배번 7)를 ‘빅뱅이라고 가장 먼저 부른 이도 김기태 감독이다. 김기태 감독은 ‘큰 이병규(40)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병규가 당당히 자신의 이름에 대한 권리를 찾길 바랐다. 때문에 팀 내에서 ‘작뱅 금지령을 내렸다.
그를 보고 ‘형님 리더십의 대가라고 불렀다. 하지만 23일 삼성 라이온즈전이 열렸던 대구구장에 김기태 감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레 들려온 소식은 그의 자진사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심정을 밝혔다.
김기태 감독의 소식이 전해지기 이전까지 LG는 4승1무12패로 3연패에 빠져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이끈 수장이 단 17경기만에 물러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내부 고위관직과의 불찰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기태 감독이 LG 2군 감독이던 시절을 떠올린 한 선수는 선수들의 마음을 가장 많이 이해해준 분”이라며 언제나 선수들 편이었다. 그분이 있었기에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감독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선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감독이 떠났다. 현재 프로야구계에 가장 필요한 감독의 자질을 갖춘 그와의 이별이 선수들과 야구팬들에게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gioia@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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