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김윤경 기자의 창업 고수찾기]부도 3번 맞은 사장, 직원에게 지분 50% 주면서… "망해라"
입력 2014-02-20 15:33 
경선호 드라이작 대표는 3번의 부도를 맞고 재기해 3개 사업체를 운영하는 ceo가 됐다.

젊은 시절에 사업을 하다 망하는 것은 예방주사를 맞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망해보니 덜 먹고 덜 쓰며 돈을 모으는 법을 알았고, 망해보니 내 사람이 눈에 보였고, 처절하게 밑바닥 생활을 하고나니 더 높이, 더 멀리 보고 사업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핵심은 사람입니다. 내 사람이 없는 사람은 망했을 때 절대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많이 베풀고, 많이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 건 진리죠.”
스무살에 대학에 입학하며 사업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업자등록증을 먼저 만들고 경험 부족으로 3번의 부도를 맞았다가 다시 일어선 이가 있다. 그는 처음부터 가난했기에 또 다시 망한다고 해도 두려울게 없다고 했다. 몇 번의 실패 덕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저력도 생겼단다.

경선호 드라이작 대표는 청년창업가들에게 망해보라. 그것도 일찍, 더 일찍 망하라”고 주문했다. 망해보는 것은 다시 일어설 힘을 가질 수 있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며 고통을 기쁘게 생각하며 이겨내는 사람에게 행운과 행복이 온다고 말했다.

경선호 대표는 LK트레이딩, SM트레이딩, 카야피엠케이 주식회사를 이끄는 37세 백말띠 사업가다. 각각 육류 무역, 중국 자체 유통, 육가공 및 외식사업을 하는 회사다.

경 대표는 유럽식 바비큐 전문 프랜차이즈를 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무역 사업과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프랜차이즈의 고질적인 문제인 본사의 폭리를 줄여 보겠다고 시작한 사업이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외식업 브랜드 드라이작 외에 두 사업체의 연매출은 수십억원대다.


경 대표의 사업 시작은 20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기계공학도는 220만원으로 봉고차를 한대 구입해 배추장사를 시작했다. 망했다. 감자밭을 사서 밭떼기를 했다가 또 망했다. 세번째 사업에선 20억원의 빚을 졌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에 3억~4억원씩 빚과 이자가 불어나는데 딱 죽고 싶었어요. 보름동안 술을 퍼마시다 든 생각은 ‘나 경선호인데… 참 열심히 살았고, 베풀면서 살았는데… 남한테 해 안 끼치고 땀 흘려 열심히 벌어 먹고살았는데… 였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경 대표는 스스로가 아까웠고, 여기서 포기하기 싫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친한 형의 사업을 도우며 재기를 결심했다. 형 밑에서 일하며 급여도 받지 않았다. 형에게 일을 가르쳐주기만 하면 급여는 없어고 된다고 도와달라고 무작정 찾아갔다. 얼마 뒤 유명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직원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도 같았다. 그는 당시 프랜차이즈 대표에게 월급은 받지 않아도 좋으니 일을 가르쳐 달라”며 지금 월급을 받지 않는 대신 나중에 내 사업을 하겠다”고 공언했단다. 그는 상품개발 기획, 무역, 구매 등 업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몇 년 뒤 본격적으로 사업에 발을 들였다.

경 대표는 내 사람이 없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거다”며 내 스스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순간에도 남을 도왔고,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도움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몇 배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호 드라이작 대표는 사업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경 대표는 사업 시작 10년 만에 홍대에 자신의 이름으로 건물을 샀고, 회사 3개를 운영하는 대표가 됐다.
그는 3번 망하고 재기를 꿈꾸며 급여 없이 외식업체에서 근무하며 쌓은 노하우와 인맥으로 육류 수출업 LK트레이딩 회사를 세웠다. 그는 이 사업에 손대며 언젠가 외식업을 하기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했다.

사업 아이템은 한국인들이 선호하지 않는 부위를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당시 돼지의 부속물은 한국에선 똥값이었지만 중국에서는 kg당 1000원에 팔렸다.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에서는 한국산 돼지 부속물을 현지 소고기 값 보다 비싸게 쳐주었다. 게다가 중국인도 중국인이 제조한 상품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생기며 선호도는 더욱 높아졌다.

그 무렵 함께 진행한 사업은 중국 내 유통업 SM트레이딩이었다.

그는 회사 전 직원을 한족으로 구성했다. 아무리 자본금이 많고 사업을 잘하는 이라도 한국인은 한족의 주류사회에 편입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기획한 사업이었다. 경 대표는 100% 한족을 직원으로 꾸리며 그들에게 지분을 50% 주었다.

사업가들은 대부분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에게 투자는 하지 않습니다. 인재를 데려와 내 사람으로 두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왔다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외식 프랜차이즈 드라이작을 시작한건 2012년 6월. 드라이작은 육가공 전문가와 하향식 공조 시스템 바비큐 기계를 제작하는 기업, 초이푸드가 합작해서 만든 브랜드다. 이태원, 강남, 홍대 증 고민하다 홍대에 140평 규모로 5억원을 들여 오픈했다. 월 매출은 1억원 정도.

강남은 임대료와 인건비를 빼고 나면 순수익이 남을 것 같지 않았고, 이태원은 마니아층들이 모이는 곳이라 대중성 측면에서 안테나숍으로서는 안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20~30대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곳 홍대가 적합했죠.”
경선호 드라이작 대표는 청년창업가들에게 조금 더 일찍 망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기존 브랜드들이 제공하는 한국식 퓨전 소시지가 아닌 향신료까지 수입해 오리지널 유럽식 소시지를 만들었다. 합성조미료를 사용하는 대신 소금으로 맛을 낸다.
경 대표는 시장의 흐름, 즉 트렌드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 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내가 가장 잘 알고 잘 하는 분야에서 재미있게 임할 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봄에 여름을 준비하고, 가을에 겨울을 준비하듯 사업도 마찬가지다”며 규모가 작은 외식기업의 경우 기획실이 따로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 대표가 생각하는 사회 환원은 우선 직원들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목 하에 몇 억원 씩 단체에 기부하는 것보다 내 직원들 월급을 먼저 올려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내 회사처럼 일하라고 주문했다면 열심히 함께 일한 직원들과 수익도 같이 나누는게 옳죠. 각자가 한만큼 주머니에 채워주고, 그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 사장의 역할이죠.”

그는 우수한 직원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한다. 그리고 자기 밑에서 오래 있지 말고 더 높은 급여를 받고 스카웃 받아 이직하라고 말한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이야기다.

떠나기 싫은 회사, 입사하고 싶은 회사가 될 겁니다. 사업에 성공하는 법이요? 저는 그런거 없어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노력 10%, 그걸 노력했을 때 잘 할 수 있는 능력 10%, 나머지 80%는 운이고 복이죠. 운과 복은 아까 얘기했던 사람이고요.”

[매경닷컴 김윤경 기자 / 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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