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이석기 판결에 묻혀버린 안철수 창당
입력 2014-02-18 13:43  | 수정 2014-02-19 17:05
어제 정치권에는 중요한 일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1심 선고와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새정치 연합의 창당 발기인 대회가 그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행사는 모두 오후 3시에 예정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쪽에서 창당발기인 대회를 오후 2시로 앞당겼다고 합니다.

이석기 의원 1심 선고에 쏠린 관심 때문에 대회 행사가 자칫 묻힐 수 있다고 판단한 걸까요?

지난 대선 때마다 보여줬던 절묘한 타이밍의 정치가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던 걸까요?

이석기 의원이 세긴 센 모양입니다.

이석기 의원에 대해 어제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선동 혐의에 대해 검찰의 공소 내용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징역 12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습니다.


이대로 대법원까지 가서 형이 확정되면 이석기 의원의 정치 생명은 사실상 끝나게 됩니다.

올해 52살인 이 의원이 12년 징역형을 살면 63세, 그 이후 10년 동안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다고 하니 73세까지는 선거에 나올 수 없게 됩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의 20년 구형보다 형량이 줄었지만, 대체로 적정수준이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물론 이 의원 쪽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 의원은 어제 오후 2시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해도 표정이 밝았습니다.

변호인으로 참석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웃으며 악수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 내용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판결문을 읽기 시작하자 점점 표정이 굳어져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징역 12년 형이 선고될 때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재판부를 쳐다봤다고 합니다.

이석기 의원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재판부가 피고인 7명에게 모두 중형을 선고하자 법정은 이내 시끄러워졌습니다.

일부 방청객들은 재판부를 향해 욕설을 하기도 했고, 일부는 "정치 판사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이석기 의원의 누나는 이 의원이 탄 호송차가 수원지법을 벗어나자 "정치재판이다"며 땅을 치고 오열했습니다.

보수 진보 진영의 맞불 집회도 있었습니다.

▶ 인터뷰 : 보수단체 회원
- "대한민국에서 떠날 사람, 북한으로 추방하자! (추방하자!) 추방하자!"

▶ 인터뷰 : 진보단체 회원
-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 재판,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영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타난 반응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파급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석기 의원이 민혁당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할 때 이를 사면해준 참여정부의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에게 화살이 꽂히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2003년 8·15 사면을 논의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석기 사면을 주도했다며, 문 의원의 책임을 거론했습니다.

문재인 의원은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그 사람들의 사고나 행태에 대해 전혀 찬성하기 어렵다"며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란음모죄에 해당하느냐는 것은 (최종 판결이) 끝난 게 아니라며 신중한 견해를 보였습니다.

물론 가석방에 대한 책임론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이석기 의원의 1심 선고는 현재와 미래에도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당장 지금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2차 변론에서 정부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내란음모를 한 이석기 의원을 통합진보당이 옹호해주고, 찬동했다면 정당 해산의 사유가 될테니까 말입니다.

또 RO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진보당 당원들이고, 이 행사가 당원모임이었다고 한 만큼 RO의 활동이 진보당의 활동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진보당은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될 겁니다.

이런 이유로 진보당은 어제 이석기 의원에 대한 1심 재판은 진보당 해산을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이정희 / 통합진보당 대표
- "나온 것은 정당해산용 맞춤 판결입니다. 제작주문은 박근혜 정권이 했습니다."

새누리당은 정당 해산 심판도 서둘러 줄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최경환 / 새누리당 원내대표
-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도 6.4지방선거 전 결론나게 헌재 판단을 서둘러달라. 이석기를 비롯한 유죄판결 받은 사람이 몸담은 정당이다."

이렇듯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의 정당해산 심판은 적어도 어제 하루만큼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정치권의 블랙홀이었습니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관심을 끌기에는 태부족이었습니다.

게다가 사실상 창당 발기인 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 가운데 깜짝 놀랄만한 인사는 없었습니다.

강봉균 전 민주당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역시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인물난 때문인지, 안철수 의원은 어제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출판기념회까지 찾아가 삼고초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김상곤 교육감과 안철수 의원의 생각은 많이 달랐습니다.

▶ 인터뷰 : 김상곤 / 경기도 교육감
- "(신당 입당 등) 뭐 그런 사안들에 대한 것은 나중에 제가 3월 초에 판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새정치연합(가칭) 의원
- "그 점에서 제가 가야 할 길, 교육감께서 가고 계신 길이 다른 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의원은 김 교육감을 다시 만나겠다고 했지만, 김 교육감은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쩐지 안철수 바람이 자꾸만 소멸해간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의 관심도만 놓고 보면,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 사태는 태풍급이고, 안철수 의원의 신당은 찻잔 속 미풍에 불과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어제와 오늘은 그랬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ㄴ디ㅏ.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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