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하나銀, KT자금부에 전화 한통 안했다
입력 2014-02-07 15:59  | 수정 2014-02-08 00:00
사상 최대 규모인 3000억원 대출 사기사건의 대출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허술하게 이뤄진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번 사건 원인은 금융회사와 KT ENS 내부통제 시스템 부재였다. 은행들은 KT ENS가 KT 자회사라는 이름만 믿고 대출 과정에서 회사 측 자금부에 추가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KT ENS는 직원 한 명이 회사의 대출 서류를 수년간 위조했지만 이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 하나銀, 과도한 대출 한도
하나은행은 연매출이 5000억원에 불과한 KT ENS가 연관된 대출 거래에 최대 3100억원에 달하는 대출한도 승인을 해줬다. 금융계는 이런 대출한도가 이례적으로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대기업인 KT 자회사라는 이유로 인해 대출 승인 과정이 소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KT ENS처럼 작은 회사에 과도한 대출을 해준 측면이 있어 보인다"며 "아마 KT라는 회사를 보고 승인이 이뤄졌던 것 같다"고 밝혔다.

하나은행 측은 주로 휴대폰 판매로 매출이 발생하는 회사인 KT ENS 특수성을 감안해 대출 승인을 내줬다고 해명했다. 보통 휴대폰 매출이 2~3년간 할부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출 심사 과정에서 매출 기준을 최대 3년(총 1조5000억원)으로 잡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회사 사업목적은 휴대폰 판매가 아니라 네트워크 유지ㆍ보수라는 점에서 하나은행은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2012년부터 KT ENS는 휴대폰 관련 매출이 전혀 없다.
◆ 은행들 왜 속았나
은행들은 위조에 대한 위험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하나은행, 농협은행, 국민은행 등은 김 모 KT ENS 부장이 조작한 서류만 믿고 의심 없이 대출 승인을 내줬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KT ENS 사무실에 가서 대출확인서에 인감도장까지 받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부장은 자금을 집행하는 담당자도 아닌 영업부장이었다. 그럼에도 은행은 자금을 집행하는 자금부서에 어떠한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KT ENS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은행이 회사 자금부에 전화 한 번만 했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은행권에서는 대출 서류 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전자외상매출채권을 통한 거래를 주로 하고 있다. 공식적인 회사 시스템을 통해 채권 발행이 이뤄진다면 조작 위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담당자가 직접 서류를 통해 매출채권을 발행했기 때문에 조작 위험성이 내포돼 있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매출채권 거래는 위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요즘에는 전자로 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만약 전자 거래가 아니면 그만큼 위조에 대한 내부 확인 절차를 철저히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08년부터 수년에 걸쳐서 발생했다. 그동안 여러 번에 나누어서 대출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측에서는 면밀한 심사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질적으로 대출을 한 주체는 KT ENS의 협력업체들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이었다. 하지만 은행들은 KT ENS가 협력업체들에 발급해준 세금계산서만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이 세금계산서를 KT ENS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을 받고 발행해 준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문서 역시 김 부장의 작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KT측 사전에 왜 몰랐나
KT ENS 측은 사건이 세상이 알려지기 직전까지 전혀 사기대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업부장 한 명이 모든 서류를 조작ㆍ위조했지만 회사 측은 어떤 이상한 점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KT ENS 측은 "김 부장이 회사 몰래 협력업체와 사기를 도모했기에 감지가 쉽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수년 동안 내부 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뒤늦게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KT ENS 감사실에서는 김 부장 소재를 파악해 검찰에 자진 출두시켰지만 내부 통제에 심각한 허점이 있음을 드러냈다.
[안정훈 기자 / 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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