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직장人 직장忍] 직장인 또 다른 안식처 화장실…"이럴때 민망해요"
입력 2014-02-06 09:54 

A금융그룹에 다니는 K대리는 남들보다 늘 30분 일찍 출근한다.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도, 일이 많아서도 아니다. 아침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화장실이 그의 출근을 오늘도 재촉한다.
K대리는 입사 첫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아침만 되면 정해진 그 시간에 알람처럼 울리는 뱃속 신호로 얼굴을 붉혀야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찾아 이리저리 뛰었지만 빈 자리가 없어 결국 속옷에 용변을 묻히고 말았다. 들어가는 화장실마다 늘어선 줄은 '하늘이 노랗다'는 것을 새삼 실감나게 만들었다.
최근 화장실 문제로 고충을 토로하는 직장인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나만의 장소에서 조용히 볼일을 해결하고 싶지만 출근 전쟁 못지않게 화장실 전쟁까지 치러야 하는 과장과 대리들은 볼일도 마음 편히 못 본다며 하소연 한다. 사람은 많은데 화장실은 협소하고 종종 필수품인 휴지가 없어 낭패를 본다. 때론 듣는 귀가 없다고 생각하고 무심코 던진 상사의 뒷담화로 직장생활이 꼬이기도 한다.
◆급할 때 화장실 들어가면 끝?…방심은 금물
C중소기업 S대리는 그때 그 일만 생각하면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여느 때와 같이 전날 회식으로 출근하자마자 항문에 힘껏 긴장을 주고 화장실로 직행, 시원하게 급한 용무를 보는데 '아뿔싸'. 이날따라 휴지가 온대간대 없었다. 급히 사주경계 후 바지를 반쯤 내린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옆 칸 화장실로 들어서는 순간 그녀와 마주치곤 머릿속이 하얘졌다. 때마침 휴지를 보충하러 온 청소 아줌마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S대리는 지금도 그 아줌마와 마주치면 그때 그 일이 뇌리를 스쳐 고개를 들 수 없다.

◆어색한 직장 상사와의 만남…"하필 여기서"
D보험사 B대리는 늘 만원인 좁은 화장실 때문에 난처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점심식사 후 화장실 풍경은 사람이 나오기가 무섭게 바로 들어간다. 특히 화장실에서 상사와 조우(遭遇)하면 상황에 따라 뒤가 영~ 개운치 않다. 급한 용무 해결 후 나는 냄새가 그 까닭이다. 화장실에서 맡기 거북한 냄새가 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좁은 화장실 탓에 D보험사 화장실은 그 냄새가 유난히 더 지독하다.
B대리는 설사 때문에 적지 않은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그날따라 볼일 본 후 나는 냄새가 얼마나 심한지 아는 사람과 얼굴이라도 마주칠까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설사와 함께 의지와 상관없이 항문으로부터 거침없이 나오는 뿡~뿡~, 뿌~우~웅 소리는 더욱 B대리를 난감하게 만든다. 멈추기가 무섭게 또 나오는 설사 탓에 그렇지 않아도 늘 붐비는 화장실은 온통 B대리의 뒤처리 냄새로 진동한다. 언제까지 나오지 않고 버틸 수만도 없는 노릇. 대강 뒷정리를 하고 재빨리 문을 여는 순간 B대리는 '맙소사' 소리없는 탄성을 질렀다. 하필 이곳에서 P부장과 마주친 것이다. B대리는 "P부장이 들어선 순간 냄새 때문에 일그러진 표정을 봤다"며 "화장실 들락날락도 마음 편히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말조심 필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아무도 안 듣는 데서라도 말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화장실이 그런 공간. 아무도 없는 듯해 무심코 한 직장 상사 뒷담화에 직장 생활이 꼬일 수 있다.
N대리가 바로 그건 경우다. 대학 선배인 C과장의 Y부장 뒷담화에 맞장구치다 졸지에 직장생활이 꼬일 대로 꼬이게 됐다. 식사 후 커피숍 화장실에서 C과장의 Y부장 험담에 "내 말이~" "공감 100%" 맞장구를 친 N대리. 직장 화장실이 아니었던 터라 C과장의 넉살좋은 상사 뒷담화에 생각없이 호응하며 한바탕 웃었다.
문제는 이날 회식 때 터졌다. 좀처럼 술을 마시지 않던 Y부장이 이날은 벌컥 원샷에 들이켰다. 회식 자리가 무르익어 갈 때쯤 Y부장은 N대리에게 귓속말로 "사람 참 그렇게 안 봤는데. 나도 그 카페 화장실에…" N대리는 순간 소름끼치는 전율과 함께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
[매경닷컴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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