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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보다 빛나는 소금을 자처한 박종우-정성룡
입력 2013-12-25 09:51 
모두가 빛이 될 수는 없다. 그림자도 있어야하고 소금도 필요하다. 그래야 팀이 빛난다. 역할은 다르나 비중까지 다른 것은 아니다. 사진= 김영구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무대를 채우는 모든 배우들이 다 주연을 맡을 수는 없다. 조연도 있어야하고 엑스트라도 필요하다. 그래야 주연이 돋보일 수 있으며 나아가 작품이 산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팀 스포츠 축구 역시 다르지 않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 에이스라 불리는 선수, 팬들의 환호가 집중되는 스타플레이어로만 11명을 구성할 수는 없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으면서 팀으로서의 시너지를 위해 희생하는 알토란같은 인물들이 있어야 비로소 팀의 경쟁력은 갖춰지게 된다. 호날두 11명이 있다고 좋은 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숨은 보석들의 가치가 더 빛나는 곳은 아마도 대표팀일 것이다. 각자의 소속팀에서 모두 에이스라 불리는 이들이 한곳에 모이는 곳이 대표팀이다. 그러나 모두가 클럽에서처럼 화려한 역할을 맡을 수는 없다. 이곳에서도 누군가는 그림자와 소금 역할을 맡아야한다. 쉬운 변화는 아니다. 항상 자신이 중심이었는데 갑자기 들러리가 되는 느낌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 그래야 팀이 완성된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 역시 마찬가지다. 기성용 이청용 손흥민 구자철 등 겉으로 드러나서 팀을 이끄는 주축들의 역할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는 이들이 없다면 그들의 가치도 빛바랠 수밖에 없다. 그런 ‘희생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대목이다. 제2의 진공청소기라 불리는 박종우가 그렇고, 오래도록 No.1 수문장으로 통하는 정성룡이 그러하다.
크리스마스이브였던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타임스퀘어는 갑자기 출현한 축구스타들 때문에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세계적인 스포츠브랜드 아디다스가 후원하는 다섯 명의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 팬들과 가까이서 만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는 2013년 한국축구의 아이콘이라 불러도 무방할 손흥민(레버쿠젠)과 홍명보호의 핵심 플레이어인 구자철(볼프스부르크), 대한민국 수비수 중에서는 최초로 빅리그에 진출한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 그리고 부산 전술의 핵 박종우와 수원블루윙즈의 수호신 정성룡이 함께 했다.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소속팀에서는 ‘간판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의 많고 적음은 달랐다. 냉정히 말해 K리그에서 뛰는 박종우와 정성룡을 향한 주목도는 해외파에 비해 떨어졌음이 사실이다. 내심 섭섭할 일이다. 대표팀 내 역할도 다르다. 하지만 고맙게도, 그 두 선수는 자신들이 해야 할 임무와 역할에 대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장 맏형으로 행사에 임했던 정성룡은 색다른 경험이다. 후배들 덕분에 나도 오늘은 아이돌 멤버가 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떤 뒤 다들 후배지만 나보다 형 같은 면이 있어서 배울 것이 많다. 후배들과 함께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로 자신을 낮추고 동료들을 돋보이게 했다. 이는 브라질을 향하는 홍명보호 내에서의 마음가짐도 다르지 않았다.

정성룡은 2013년은 아마도 잊을 수 없는 한해가 될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쉬면서, 무엇인가 나를 되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면서 내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모두 하나가 되어 좋은 성적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내가 중심이라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임하겠다는 다른 표현이었다.
박종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12년과 비교해 2013년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부남이 되었고, 아이도 생겼다”고 농을 던진 뒤 이전까지와의 플레이도 달라졌다. 많이 성숙할 수 있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2012년과 2013년을 잘 합쳐서 2014년에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부산아이파크에서는 윤성효 감독이 구상하는 전술의 핵심이지만, 아무래도 국가대표팀에서는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른 어떤 포지션보다도 무게감 있는 선수들이 많고 따라서 경쟁도 치열하다. 박종우는 빛이 아닌 그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고맙게도, 또 훌륭하게도 박종우는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은 포지션이다. (기)성용이 형이나 (구)자철이 형 옆에서 궂은일을 맡는 것이 나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어떤 몫이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속 깊은 생각을 드러냈다. 이런 선수들이 있어야 ‘팀이 될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은 부임 후 내내 ‘원팀 원스피릿 원골을 강조하고 있다. 그 지향점을 위해서는 선수들과 선수들을 묶어주는 접착제도 있어야하고, 그들 사이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류도 있어야한다. 최고의 수문장 정성룡과 최고의 중앙미드필더 박종우 모두 겸손하게 자신의 꿈을 낮췄지만 그들의 역할비중까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lastuncl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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