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극한으로 치닫는 '노-정' 대결, 중재 못하는 정치권
입력 2013-12-23 12:12  | 수정 2013-12-23 17:27
연말이지만, 연말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성탄절이지만, 사랑과 은총은 전혀 느껴지질 않습니다.

2013년 12월 대한민국의 자화상입니다.

어제 경찰은 민주노총 건물에 진입했습니다.

경찰 병력 5천 명이 민주노총 건물을 에워싸고, 1층 유리창을 깨고, 극렬 저항하는 노조원 130여 명을 연행했습니다.

그 모습을 TV를 통해 전 국민이 지켜봤습니다.

어땠을까요?

불법파업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정부, 그리고 18년 만에 최대 노동탄압이라는 노조.


노-정 대결은 그렇게 극한으로 치달았습니다.

오늘 아침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
-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편하고 힘들지만, 이 시기를 잘 참고 넘기면 오히려 경제사회의 지속 발전이 가능한 기반을 다지게 될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노조 파업과 정부 대응이 잘못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노조가 무리하게 파업을 하는데도, 정부가 대충 양보하는 형태가 지속해 왔다는 겁니다.

이제는 그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역력합니다.

1987년 이후 노조에는 사실상 성지화됐던 민주노총 건물에 대한 공권력 행사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겠다는 박 대통령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조와 야권은 이를 잘못된 관행의 개선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민주주의 후퇴로 보는 것 같습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
- "어제 정부의 민주노총에 대한 사상초유의 공권력 행사는 박근혜 정권이 지난 일 년 내내 보여줬던 불통정치 결정판이었다. 어제 사건은 순종하지 않으면 용납지 않겠다는 박근혜 정부 찍어내기 연장선이다."

김한길 대표는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도행역시'도 언급했습니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철도노조가 순리를 거스르는 것일까요? 정부가 순리를 거스르는 걸까요?

현상은 하나인데, 이렇게 극과 극의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마치 지난 대선의 적대적 시선이 되살아난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철도노조는 수서 발 KTX의 자회사 설립이 절대 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의 말을 왜 믿지 못하는 걸까요?

정부의 말을 더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서승환 / 국토교통부 장관(어제)
- "철도산업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절대 민영화가 아닙니다. 근로조건과 상관없이 철도 경쟁도입이라는 정부정책에 반대하면서 독점에 의한 기득권 유지를 위한 철도노조 파업은 어떠한 명분과 실리도 없는 불법파업입니다."

▶ 인터뷰 : 유정복 / 안전행정부 장관(어제)
- "철도노조 핵심지도부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정부의 영장 집행은 어떤 단체나 개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정부는 심지어 수서 발 KTX 법인이 나중에 민간에 지분을 매각하면 면허권을 정지시키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노조는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불신의 출발점은 과연 어디였을까요?

지난 대선 패배부터 그 불신은 싹텄을까요?

그렇다면, 철도노조는 지난 대선부터 박근혜 정부가 무슨 말을 하든 믿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정부가 정치화된 노조를 설득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 인터뷰 : 신승철 / 민주노총 위원장(오늘)
- "철도노조 파업으로 시작된 민주노총 침탈사태에 대해 80만 전체 조합원과 국민이 함께 투쟁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침탈이 시작된 즉시 비상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해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을 결의했다."

반대 관점에서 볼까요?

정부는 왜 노조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는 걸까요?

조금 더 대화하고, 조금 더 만나 노조를 설득했으면 어땠을까요?

경찰 5천 명을 투입하는 대신 말입니다.

수서 발 KTX 법인 설립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으니, 국민과 노조를 상대로 좀 더 홍보를 강화하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요?

정부가 철도노조 파업을 더는 좌시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지난 이명박 정부 때 광우병 파동처럼, 잘못된 괴담이 국민 불안을 부추겨 국정운영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공기업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는데, 노조 파업으로 흐지부지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노조는 28일 총파업을 비롯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고, 시민단체와 야권도 가세할 모양새입니다.

정부는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했습니다.

충돌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여야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
- "여야가 공동으로 (철도를) 민영화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공동결의안을 합의 처리해 이 문제를 매듭짓자"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
- "국회에서 법에 민영화 금지 명시하는 걸로 수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공동결의안을 채택하자, 법에 명시하자는 여야 대표의 제안은 과연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파국을 막을 만큼 영향력 있고 충분할까요?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간담회를 열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과 노조를 충분히 설득하라는 겁니다.

여의도 정치는 실종됐고, 노사정의 양보와 대타협 정신은 깨져버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연말은 전혀 따듯하지 않습니다.

차가운 바람만이 맴돌고 있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