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조급증에 빠진 증권사들…내부통제는 어떻게?
입력 2013-12-20 08:44  | 수정 2013-12-20 11:10

◆ 파생상품 주문 사고, 이대로 좋나 下 ◆
파산 위기에 내몰린 한맥투자증권을 계기로 증권사들의 내부통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물옵션 거래에서 얼토당토않은 가격에 주문을 냈지만 정작 이를 걸러 내는 내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0.1초라도 빨리 거래를 체결해 매매차익을 내려는 증권사의 조급증이 결국 제 살을 깎아 먹고 있다. 내부통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
◆ 위탁매매 등 투자자 보호 위한 내부통제는
현재 증권사들의 내부통제는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가 마련한 모범규준 및 전자금융거래법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주로 위탁매매를 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들이다.
A증권사 관계자는 "사내 컴플라이언스팀에서 누적호가 수량이나 리스크 한도 관리를 체크하고 있다"며 "전산 시스템상 이상 징후를 포착해 거래 경고창을 따로 띄우거나 주문을 보류시켜 사고를 방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증권사들이 참고하는 금융투자협회의 모범규준에 따르면 주문입력자와 금융투자상품별 내부통제 기준이 소상히 나와 있다.

예컨대 주가지수선물의 경우 '경고'기준은 주문 수량이 300계약 초과에서 500계약 이하의 주문 또는 직전약정가격 기준으로 50틱 초과에서 100틱 이하의 주문이라고 명시돼 있다. 주가지수옵션은 주문금액이 20억원 초과에서 50억원 이하의 주문일 때는 '경고', 주문금액이 50억원을 초과할 때는 보류기준이 적용되는 식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사들은 손해배상책임 보험 등에도 가입해 있다. 전자금융거래법상 금융사들은 금융사고를 대비해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계약체결 시 갑자기 HTS가 먹통이 되거나 오류가 있을 때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실제로 이번에 금융사고가 난 한맥투자증권은 전자금융거래로 인한 사고를 배상할 목적으로 한화손해보험에 한도 5억원짜리의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50억원, 신한금융투자 30억원, 우리투자증권이 10억원 한도의 손해배상책임보험을 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현대증권의 경우 전자금융사고배상준비금으로 5억원을 따로 적립해 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같은 보험 가입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내부통제의 일환이다"며 "보험 갱신 후 제대로 상품에 가입이 돼 있는지, 준비금은 적립돼 있는지 등을 분기마다 증권사들로부터 보고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매매 내부통제는 뒷전…이유가
문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내부통제에 비해 자기매매 등 증권사 스스로의 계산에 입각한 증권 매매의 내부통제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단 한번의 주문실수로 파산위기에 내몰린 한맥투자증권 역시 DMA(Direct Market Access)란 초고속 직접주문 전용선을 통해 순식간에 계약이 이뤄지는 자기매매를 하다 금융사고가 났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자기매매의 내부통제가 어려운 이유로 관련 비용 부담과 '속도가 곧 수익'을 의미하는 거래 구조를 꼽는다.
B증권사 관계자는 "자기매매의 내부통제를 위해선 전문 인력과 프로그램 업데이트 등 그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며 "시스템을 한번 구축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계속 관리해줘야 하는데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증권사들이 이를 감당하기란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그나마 딜러 등 전문 인력들이 자체 필터링 하던 것도 최근 구조조정이 이뤄지며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전문 인력들의 빈 자리는 컴퓨터 자동매매 프로그램이 꿰찼다. 하지만 내부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금융사고 위험만 더 커졌다.
속도전 양상을 띄는 증권 거래 역시 자기매매의 내부통제를 더욱 힘들게 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남보다 0.01초라도 빨리 거래를 체결해 매매이익을 남겨야 하는 증권사 입장에선 자동매매 프로그램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며 "이런 구조 속에서 사전 필터링을 하면 그만큼 시간을 지체해 손실이 날 수도 있으니 내부통제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 모범규준 상 리스크 헤지 및 현·선물 연계주문 등 '신속성'이 중요한 주문은 경고 및 보류 기준 적용대상에서 아예 제외돼 있다. 장중 대량매매, 장중바스켓매매, 차익거래, 비차익거래, 헤지거래, DMA 주문 등이 그 예외 사항이다.
금융당국과 금융투자협회는 잇달아 자동매매 프로그램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내부 통제 개선 작업에 돌입했다. 중소형 증권사들이 집중 점검 대상으로 자기 매매시 내부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들여다 볼 방침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증권사별로 내부통제 현황 자료를 취합하는 중"이라며 "모범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들을 뽑아 제도 보완에 나설 계획이다"고 말했다.
금감원과 거래소 역시 자동매매 프로그램에서 위험 방지 장치의 도입을 모색 중이다. '킬 스위치(Kill Switch)'도입이 대표적이다. 킬 스위치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자동 매매를 할 때 주문 착오시 해당 계좌에서 제출한 모든 호가를 한꺼번에 취소하는 기능을 말한다. 추가 확산 방지를 위해 더 이상의 호가 접수도 차단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보통신 기술 발전에 제도가 미처 따라가지 못한 점이 있다면 보완할 것"이라며 "아울러 증권사들이 내부통제를 소홀히 한 점은 없는지 곧 검사를 나가 살펴볼 예정이다"고 밝혔다.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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