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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맥] 류승우의 ‘기막힌 임대’, 본인 의지 없다면 ‘악수’다
입력 2013-12-16 15:09 
류승우가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두가 윈-윈으로 보이는 기막힌 임대계약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도전의지가 없다면 악수가 될 수도 있다. 사진(인천공항)= 옥영화 기자
수많은 취재진을 발견한 류승우의 표정에는 당황함이 역력했다. 아직 스포트라이트가 익숙하지 않은 새내기의 풋풋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어색함이 당황함을 구성하는 전부는 아니었다. 혹여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의 표정이 나왔다. 독일 분데스리가라는 큰물로 뛰어드는 젊은 피의 출국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밋밋했다. 류승우는 내내 구단에서 좋은 결정을 내려줬기 때문에...”라는 소극적 각오를 반복했다. 자신의 의지가 결정에 있어 적은 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 임대가 결정된 제주유나이티드 소속의 류승우가 메디컬테스트 및 입단 절차를 밟기 위해 16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류승우는 배려를 해준 제주 구단의 결정에 감사드린다. 두려움 반 설렘 반이다”라면서 (손)흥민이 형이 같은 팀에 있다는 것은 분명 든든한 일이다. 하지만 나 혼자 극복할 일이 많을 것이다. 도움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후회 없는 1년이 되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지난 여름 U-20월드컵 이후 독일 도르트문트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등 유수 클럽들이 러브콜을 보내왔을 때도 류승우는 스스로 거부했다. 그리고 택한 곳이 제주유나이티드다. 지난 10일 2014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만난 류승우는 과거를 회상하며 당시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는 말로 K리그에서 차근차근 성장한 뒤 해외진출을 도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틀 뒤인 12일 프로축구연맹이 마련한 신인선수 교육에도 참가했다. 류승우는 강사 자격으로 참가한 2013년 MVP 김신욱을 향해 손을 번쩍 들고 시즌을 치르면서 슬럼프가 찾아오게 되는데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질문하는 등 적극적으로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그랬던 류승우의 레버쿠젠 임대가 발표된 것은 13일이었다.
갑작스럽게 두려움이 사라지거나 해외진출을 위한 준비가 획기적으로 마련됐을 리는 없다. 때문에 사흘만의 방향 변경은 의아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류승우는 2가지 이유를 전했다. 하나는 레버쿠젠에서 ‘임대를 제안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제주 ‘구단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류승우 레버쿠젠행의 형식은 ‘위탁 임대다. 제주 소속으로 1년 동안 레버쿠젠에 빌려주는 것이다. 그 1년 동안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면 레버쿠젠이 완전이적을 추진할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의 이적도 가능하다. 만약 실패해도 비빌 언덕이 있다. 다시 제주 유니폼을 입고 K리그로 돌아오면 된다. 만약 신인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해외에 나갔다면, 류승우는 향후 5년간 K리그로 복귀할 수 없다. K리그 내 소속팀도 마련하고 해외진출에도 성공한 셈이다. 때문에 이번 계약을 ‘편법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제주 구단 관계자는 편법이라는 반응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에 대한 구단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수는 없으나, 꼭 편법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는 뜻을 전했다. 정면 돌파가 아닌 것은 맞다. 모르고 있던 뒷문을 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위험부담을 줄인 채 해외진출을 도모하는 ‘기막힌 수에 가깝다. 류승우가 임대이기에”라고 말한 것은 ‘뒤가 있다는 든든함이다.
제주 구단도 손해 볼 것 없다. 출국장에 나온 제주 구단 관계자는 팀에서도 류승우를 다음 시즌 주축 전력으로 구상하고 있었다”는 말로 아쉽지만 양보한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송진형 윤빛가람 등 훌륭한 미드필더들이 많은 상황에서 절실한 공백은 아니다. 성공여부를 떠나 빅리그를 경험한 2년차 플레이어가 돌아오길 기다리면 된다. 만약 완전 이적이 된다면, 제주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추가적인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류승우 에이전트 측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이력서에 레버쿠젠 임대라는 한 줄이 가지는 힘이란 K리그 제주유나이티드 하나보다 플러스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앞길이 창창한 선수이기에 몸값을 높이기에 좋은 디딤돌이다. 문제는, 류승우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임대냐는 것이다. 때문에 본인 의지에 대한 즉답은 피한 채 구단이 선택을 내려줬기 때문에”라던 대답은 아쉬움이 남는다.
제주 구단 관계자는 류승우의 출사표가 소극적이었던 것과 관련해 오래 생활해 보지는 않았으나 아마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런 이유기를 바란다. 하지만, 애초 유럽발 오퍼를 거절했을 때처럼 불안하거나 자신이 없는데 주위의 결정에 떠밀린 듯 받아들인 것이라면 걱정이 크다. 제주로 돌아오면 된다는 안전장치가 위로가 되겠으나 자신감 결여된 도전은 단순한 실패 이상의 손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축구 관계자는 류승우가 과거 해외클럽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기량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래들 중에서 부동의 에이스라 평가받는 것도 아닌데 엄청난 클럽들의 이름이 나도니까 자신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번 계약은 주위의 설득이 많았을 것이다. 류승우를 둘러싼 주위 입장에서는 당연히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설명을 전했다. 즉, 자신보다 주위 입김이 더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떠밀렸든 자신의 판단이든, 이제 류승우는 독일 생활을 시작해야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도전이 될 것이다. 팀 이름이 레버쿠젠이다. 분데스리가에서도 강호다. 손흥민이 주전으로 뛰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1년 안에 류승우라는 신예가 레버쿠젠에서 자리 잡는 것은 불가능이라 입을 모은다. 출전기회 자체도 불투명하다. 때문에 스스로의 적극적인 도전의지가 더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류승우는 다치지 않고 좋은 경험을 쌓고 오겠다”는 평범한 출사표를 던졌다. 어영부영 보내는 1년은 경험 축적이 아닌 허송세월이 될 수도 있다. 내성적이라면 고쳐서라도 도전의지를 키워야한다. 향수병을 비롯해 쓰린 외로움도 이겨내야 한다. 주위의 도움도 중요하나 결국은 자신이 극복해야할 일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기막힌 임대가 악수로 끝날 수 있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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