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장성택 사형] '김일성의 사위' 장성택 굴곡진 인생 마감
입력 2013-12-13 14:00  | 수정 2013-12-13 15:24
【 앵커멘트 】
장성택은 김일성의 유일한 사위이자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의 고모부였습니다.
최근까지 북한의 2인자였던 장성택은 40년 넘게 북한의 지도부 핵심으로 자리잡았지만,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홍승욱 기자입니다.


【 기자 】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일생은 상승과 추락의 반복이었습니다.

김일성대에 다니던 장성택은 김경희와 교제를 반대하던 김일성 주석에게 쫓겨나 원산 농과대학으로 유배됐습니다.

하지만, 김경희가 끈질기게 김일성을 설득해 장성택은 1972년 결혼을 하고 그야말로 출세길에 올랐습니다.

장성택은 몇 해 뒤 파티를 지나치게 즐긴다는 이유로 강선 제강소에서 사상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장성택은 김일성 주석 사망을 계기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지만, 2002년에는 국가 예산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김경희와 함께 강원도로 유배를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며 장성택은 기사회생에 성공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동생 김경희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면서 남편인 장성택도 명실상부한 2인자로 올라선 겁니다.

김정일이 후계자를 고민할 때도 옆에서 직접 조언했고, 김정은에게 정권이 넘어가던 과도기에는 후견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8일 반당 행위로 체포됐을 때도 김경희의 후광에 힘입어 목숨은 부지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결국 굴곡진 삶을 마감하고야 말았습니다.

MBN뉴스 홍승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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