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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인터뷰] ‘추캥’ 산파 오장은 “추캥이 또 다른 추캥을 낳고 있다”
입력 2013-12-05 16:07 
[매경닷컴 MK스포츠(상주) 임성일 기자] 시작은 1999년이었다. 그때 규모는 4~5명 수준이었다. 가깝게 모여 운동하던 선수들끼리 지역 내 조기축구회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작은 성금을 모았고 그것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썼던 것이 ‘추캥의 소박한 출발이었다. 그랬던 것이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축구로 만드는 행복이라는 모토처럼 그들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었으며 그들과 함께 행복을 전하기 위해 모이는 선수들도 늘어나고 있다.
작은 시작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기면서 참가 인원과 행사 규모가 커졌고 그만큼 나눌 수 있는 사랑의 크기도 커졌다. 12월4일과 5일, 곶감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 모인 ‘추캥 멤버들은 모두 38명. 시즌이 끝난 뒤 휴가를 가질 시간임을 생각한다면 굉장한 참석률이다. 게다 멤버가 거의 올스타전급이다.
올 시즌 K리그 MVP 후보였던 김신욱 이명주 하대성과 영플레이어상을 받은 고무열을 비롯해 염기훈 백지훈 박종우 김승용 강민수 이용 김승규 김재성 김원일 정혁 김기희 강수일 심우연 등 그야말로 초호화다. 겨울에 때 아닌 K리그 올스타전을 열릴 수 있게 만든 배경에 추캥이라는 아름다운 울타리가 있다.
사진(상주)= 한희재 기자
경상남도 함양군에 거주하며 선수들의 지친 심신을 치료해주시는 소병진 선생(일명 소나무 선생님)과의 특별한 인연을 맺은 선수들이 단초였다. 그 중심에는 수원의 팔방미인 오장은이 있다. 4~5명 초창기 멤버였던 오장은은 이 모임의 실질적인 리더다. 말이 좋아 리더지 궂은일을 도맡고 있는 일꾼이다. 희생하는 오장은이 있기에 지금과 같이 모임이 성장할 수 있었다.

5일 상주 시민운동장에서 만난 오장은은 그야말로 행복한 웃음을 보였다. 그는 처음에는 우리끼리 시골(함양)에서 시작한 모임이다. 그랬다가 유니폼도 만들어볼까? 선수 몇 명 더 불러서 11명을 만들어볼까? 좀 더 유명한 선수를 불러볼까? 식으로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 유명한 선수들이 오니까 팬들이 오고, 팬들이 늘어나니 언론에도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규모가 됐다”는 말로 추캥의 14년 발전사를 소개했다.
이제는 어엿한 행사가 됐다. 올해 추캥 멤버들은 이틀에 걸쳐 상주 지역 학교를 방문해 축구클리닉과 사인회를 진행했고 상주의 특산물인 곶감 체험 및 시식 홍보에도 참여했다. 상주지역 월남전 참전용사 또는 미망인과 결연을 맺고 매달 후원도 약속했다. 5일 오후에는 상주 시민운동장에서 ‘축구팀과 ‘행복팀으로 나눠 친선경기를 펼쳤다. 경기에 앞서 시민운동장 앞에서 진행된 전체 사인회에는 선수들을 보기 위한 시민들의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프타임을 이용해서는 상주 시민들과 함께 섞여 릴레이 경주를 펼치기도 했다. 어엿한 행사였다.
오장은은 처음에는 선수들에게 함께 해달라고 조르고 부탁했는데 언제인가부터 추캥의 의미를 알고 인식이 달라졌다. 이제는 먼저 연락 오는 선수들도 있다. 올해도 행사하냐면서. 이제는 추캥의 취지가 무엇인지 아니까 함께 하려는 선수들이 늘어났다”는 설명을 전했다. 섭외를 했다가도 하루이틀 전에 갑작스런 개인사를 핑계로 불참을 알렸던 과거의 모습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추캥이 또 다른 추캥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오장은은 처음 추캥을 만들면서 축구계에 이런 모임이 더 늘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 했는데 정말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전현직 인천유나이티드 선수 24명(우성용 김이섭 임중용 김상록 전재호 성경모 김민수 안준선 안재준 박창헌 함민석 김선우 임인성 안재곤 장원석 정혁 한덕희 강수일 안현식 이세주 고경민 이재권 전보훈 최재은)으로 구성된 ‘Amitie가 그것이다. 프랑스어로 ‘우정을 뜻하는 아미띠에 회원들은 축구를 사랑하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그 첫 단추로 오는 15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서 구세군 다문화 레전드FC과의 자매결연식을 갖는다. 또 다른 씨앗이 싹을 틔우는 셈이다.
사진(상주)= 한희재 기자
오장은은 이런 모임들이 늘어난다면, 축구선수들은 시즌이 끝나도 자발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다니는구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통해서 축구가 조금이나마 더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할 것”이라는 의미를 전했다.
추캥은 엄연한 모임이자 단체지만 사실 단체가 아니다. 멤버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오장은은 프로선수든 아마추어 선수든 상관없다. 뜻을 함께 하고 싶은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면서 축구 선수로서 팬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재능기부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자신도 귀찮고 힘들지만, 막상 행사가 끝나면 더 없이 뿌듯하다고 하는 오장은은 그야말로 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난해 결혼한 오장은은, 결혼식을 나흘 밖에 남기지 않고서도 추캥 행사를 치렀다. 와이프의 응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오장은은 오늘도 문자가 왔다. 시즌 때도 고생했는데 또 좋은 일을 하고 있어서 뿌듯하다고 격려해줬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 남편의 그 아내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생각이 나는 대화였다. 좋은 일은 모르게 하라고 하지만, 이런 일은 널리 알려야한다는 생각이다. 추캥이 더 많은 추캥을 낳을 수 있도록, 지켜보는 팬들도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lastuncl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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