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김대호의 야구생각] 세상에 둘도 없는 ‘好人’ 차영화
입력 2013-12-05 09:16 
차영화 KIA 타이거즈 3군 코치가 얼마 전 귀갓길에 발을 헛디뎌 목뼈를 심하게 다쳤다. 말도 못하고, 전신 마비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차 코치의 사고소식을 접한 야구인들은 하나같이 차영화 코치 같은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신이 있다면 이럴 수 없다”고 혀를 찬다.
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차영화 코치는 야구계에서 알아주는 호인이다. 선수시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20년 넘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여 본 적이 없다. 워낙 말 수가 적은데다 천성적으로 남한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다. 오죽하면 주변에서 저 양반은 속이 없는 사람 같다”란 말을 할까. 그렇다고 남들처럼 줄을 서거나 아부도 못하는 ‘바보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항상 선수들 편에 서 있는 사람. 질책 대신 웃음으로 다가가 진심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영원한 ‘형님이자 ‘아버지다. KIA 2,3군 몇몇 선수들은 차 코치의 낙상 소식을 듣고 충격에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차영화 코치의 인생이 항상 웃음을 달고 살 만큼 행복했던 것도 아니다. 평생의 반려자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맛봤고,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혼자 괴로움을 곱씹기도 했다. 금전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해 매우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영화 코치는 한국야구의 최고 2루수 계보에 올라갈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 광주일고가 해방 후 처음으로 전국대회 정상에 올랐던 1975년 대통령배 우승멤버로 김윤환 강만식 이현극 등이 동기다. 차 코치는 톱타자에 2루수를 맡았다. 그 해 고교 2루수 랭킹 1위였다.
차 코치는 광주일고 동기생들이 대학으로 진로를 결정할 때 혼자 신생 실업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2루 수비는 한 마디로 ‘예술이란 평가를 들었다. 아직까지 차영화 코치처럼 부드럽고, 여유롭게 2루 수비를 하는 선수는 없다는 것이 원로 야구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멤버로 프로에 입단한 차 코치는 아마추어 롯데 시절인 1976년부터 1981년까지 6년을 제외하고 고향 광주를 떠나 본적이 없다. 특히 KIA의 2군 훈련장이 있는 함평은 차 코치의 또 다른 고향이다. 차 코치는 KIA 훈련장이 들어서기 한참 전인 1990년대 중반 이곳에 사재를 털어 훈련장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여러 군데에서 이권이 개입하면서 무산됐고, 차 코치는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KIA 훈련장이 함평에 들어서자 차 코치는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곳에서 어린 후배들을 가르치며 평생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욕심이 없다. 차 코치는 평소 평생 야구와 함께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해왔다.
차영화 코치가 쓰러졌다. 그것도 전신이 마비되는 위중한 상태다. 모든 선후배 야구인들은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차 코치가 다시 일어나 예전처럼 해맑게 웃는 모습으로 야구장에 들어서기를.
[매경닷컴 MK스포츠 편집국장 dhkim@maekyung.com]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