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수쿠크` 날로 크는데…손놓은 한국
입력 2013-12-02 17:25 
지난달 2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 중심가의 남서쪽 사사나 키장에 위치한 이슬람금융센터(MIFC)는 첫인상부터 화려한 외관으로 방문객을 압도했다. 인구 3000만명도 안 되는 말레이시아가 세계 인구 4분의 1에 해당하는 무슬림의 자금을 어떻게 좌지우지할 수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슬람금융의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기싸움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슬람금융의 허브로 자리매김한 말레이시아에 런던 홍콩 등 기존 금융도시들이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은 최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까지 나서 런던을 이슬람금융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서방국가 중 처음으로 이슬람금융의 대표상품인 수쿠크를 내년에 2억파운드(약 3400억원) 발행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홍콩은 수쿠크 발행에 세제혜택을 주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유상호 사장
이처럼 이슬람금융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는 이유는 '오일머니'로 대표되는 중동자금이 넘쳐나면서 이슬람금융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MIFC와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2008년 1048억달러 규모였던 이슬람채권(수쿠크)의 발행 잔액은 올해 28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언스트앤영은 향후 4년 후에 수쿠크에 대한 전 세계 수요가 9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매년 수쿠크의 신규 발행액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210억달러 규모의 수쿠크가 발행됐지만 지난해에는 1312억원으로 6배 이상 급증했다.
가장 큰 혜택을 입고 있는 곳은 말레이시아다. 2002년 처음으로 수쿠크를 발행하기 시작한 말레이시아는 지금 세계 최대 규모의 수쿠크 발행국이 됐다. 국가별 이슬람채권 발행 비중을 보면 말레이시아가 70%에 달한다. 정부의 강력한 이슬람금융 촉진 정책에 지리적ㆍ문화적 이점이 더해지면서 사실상 이슬람금융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글로벌 흐름에 뒤처져 있다. 이명박정부 시절 이슬람금융을 허용하기 위한 세제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 상정됐다가 폐기된 이후 사실상 관련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슬람금융의 성장성이 기대되면서 국내 금융사 중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진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지난달 29일 쿠알라룸푸르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글로벌 시장에서 돈이 흘러넘치는 곳은 중국과 중동"이라며 "국회 등 정치권이 국가경제 차원에서 이슬람금융을 도입하도록 힘을 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슬람금융이 증권사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국가적 자금 조달 면에서는 우리 경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일머니는 글로벌 위험과 상대적으로 상관관계가 떨어져 위기 시 안전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사장은 "우리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말레이시아에서 일반 채권을 발행한 바 있고, 1990년대에는 종합상사도 이슬람 자금을 쓰는 등 이슬람금융을 전혀 하지 않는 게 아니다"며 "수쿠크가 이슬람금융의 상징인 만큼 이를 도입하면 이슬람금융 이용이 더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용어 설명>
▷이슬람금융 :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을 준수하는 금융행위를 일컫는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대출을 해주고 이자를 받는 구조 대신 실물자산의 매매나 이용을 통해 얻는 이윤을 배당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에게 대가를 지급한다. 수쿠크(채권), 타카풀(보험) 등이 대표적인 이슬람금융 상품이다.
[쿠알라룸푸르 = 손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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